한국영화, 디지털 시대를 맞이하다 필름의 종말, 디지털의 등장

by.주성철(영화평론가) 2019-03-26조회 3,435
설국열차 스틸
필름으로 찍은 마지막 한국영화 <설국열차>
 
<설국열차>는 필름으로 찍은 마지막 한국영화로 기록돼 있다. 이제 대세는 디지털이다. 디지털 시대의 도래와 함께 영화와 TV의 경계, 2D와 3D의 경계, 촬영 현장과 후반작업 현장의 경계는 사라지고 있다. 그렇다면 이제 하나의 질문이 남았다. 과연 기술적으로 새로운 시대의 도래가 진정 새로운 영화와의 만남을 앞당겨줄 수 있을까.

Technology 1 디지털 시대의 시작
2013년 8월 1일 개봉한 봉준호 감독의 <설국열차>는 필름으로 찍은 마지막 한국영화로 기록돼 있다. 2010년경 도입된 디지털 영사기도 필름 영사기의 자리를 완전히 대체했다. 필름 특유의 광범위한 색감과 음영 표현에 대해 얘기하며 ‘그래도 여전히 디지털이 따라갈 수 없는 필름 고유의 영역’ 운운하는 것도 향수 어린 일이 돼버렸다. 이처럼 지난 10여 년간 한국영화계가 보여준 디지털 이행 과정은 구구절절 설명하기가 이제 식상할 정도다. 그 시초는 바로 명필름과 MBC프로덕션이 공동 제작한 HD(High Definition) 장편영화인 김응수 감독의 <욕망>(2002)이었다. 러시 필름이 나올 때까지 기다릴 필요 없이 촬영장에 설치된 모니터를 통해 촬영과 연기를 즉각 확인하고 점검해볼 수 있게 됐고, 필름을 사용하는 아날로그 시스템에 비해 상대적으로 저예산이란 점이 부각됐다. 당시 실제 촬영 기간은 2개월이었고 순제작비는 9억 원이었다. 무엇보다 국내 최초로 온라인과 오프라인에서 동시에 개봉할 수 있었다. 지금이야 익숙해진 ‘IPTV 동시개봉’이라는 것이 그때쯤 시작된 것이나 다름없다. 영화는 이제 필름이 아니라 ‘파일’이 됐기 때문이다.
<스타워즈 에피소드 2: 클론의 습격 Star Wars: Episode II-Attack of the Clones>(조지 루카스, 2002)의 촬영장비이기도 한 소니의 HDW F-900으로 촬영된 <욕망>과 <아 유 레디?>(윤상호, 2002) 이후 디지털카메라가 급속도로 보급되며, 국내 장편영화 현장 풍경은 완전히 달라졌다. 당시 역시 디지털로 촬영된 <시실리 2km>(신정원, 2004)가 의미 있는 성공을 거두면서, KBS는 영화진흥위원회와 함께 저예산 HD TV영화제작 계획을 발표했다. 공모를 거쳐 선발된 총 5편의 프로젝트에 각각 3억 원의 제작비를 지원했으며, 이를 통해 완성된 유상욱 감독의 <종려나무 숲>(2005)이 개봉했다. 또한 밴쿠버영화제에 초청된 바 있는 채기 감독의 <빛나는 거짓>(2004)은 국내 최초 HD 독립장편영화로 기록됐으며, CJ CGV 디지털 장편영화 제작지원 프로그램(CJIP)으로 선정된 이진우 감독의 HD 영화 <8월의 일요일들>(2005)은 부산국제영화제에서 상영됐다. 바야흐로 극장과 인터넷, 그리고 영화제를 통해 디지털 영화 시대가 본격적으로 열린 것이다.

Technology 2 카메라 ‘레드원’과 ‘알렉사’의 등장
이후 한국영화 현장의 대세가 된 것은 ‘레드원’ 카메라였다. 김용화 감독의 <국가대표>(2009)에 처음 사용된 레드원 카메라는 그 화질의 탁월함으로 인해, TV 드라마 <추노>(2010) 촬영에도 사용됐다. 그때만 해도 ‘영화 카메라로 드라마를 촬영했다’는 것이 큰 화제였다. 이후 김희애, 유아인 주연 TV드라마 <밀회>(안판석, 2014)도 레드원 카메라로 촬영되어 ‘영화 같은 영상’을 구현했다. 이제 한국영화 현장에서 해상도가 필름급으로 뛰어난 디지털카메라가 보급되기 시작했을 뿐만 아니라, 후반작업의 경우 과거 아날로그 영화 현장에서 필수적이던 디지타이징(편집을 위해 필름을 비디오로 전환해주는 일) 작업이 필요 없게 됐다.
최근에는 레드원 이후 아리(ARRI) 사의 ‘알렉사’ 카메라가 전 세계적으로 각광받는 분위기다. 뛰어난 해상도는 물론 레드원보다 필름 질감에 더 가깝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원래 아리는 파나비전과 함께 필름 카메라 시장을 지배하던 회사였는데, 레드원이 상당한 인기를 끌며 다소 주춤하는 듯 보였으나, 2010년 알렉사를 내놓으며 주도권을 되찾고자 했다. 2016년에 나란히 개봉한 박찬욱 감독의 <아가씨>, 나홍진 감독의 <곡성>, 연상호 감독의 <부산행> 모두 알렉사로 촬영된 작품이며, 역시 같은 해 나온 TV 드라마 <도깨비>(이응복)도 마찬가지다. 불과 몇 년 만에 지각변동이 일어난 것이다. 한편, 전설적인 촬영감독 다리우스 콘지가 촬영을 맡은 봉준호 감독의 <옥자>(2017)의 주요 장면은 아리의 또 다른 카메라인 알렉사 65 카메라로 촬영됐는데, 이는 아리의 기술이 집약된 2D 디지털 대화면 전용 카메라로 전 세계에 10대가량밖에 없어 대여료가 비싼 것으로 유명하다. <레버넌트: 죽음에서 돌아온 자 The Revenant>(알레한드로 곤잘레스 이냐리투, 2015)와 <미션 임파서블: 로그네이션 Mission Impossible: Rogue Nation>(크리스토퍼 매쿼리, 2015)은 물론 봉준호 감독의 신작 <기생충>도 바로 이 카메라로 촬영됐다.
지난해 이창동 감독의 <버닝>(2018)이 알렉사 카메라로 촬영됐다는 것이 화제였다. 8년 만의 신작이기에 전과 달리 디지털카메라로 촬영된 것이 세월의 변화로 인해 새삼스러운 일은 아니겠으나, 이창동 감독과 디지털카메라의 첫 만남 자체가 흥미로운 화제였다. 실제로 그 또한 제작보고회에서 “디지털카메라가 영화의 즉흥성에 더 잘 조응한다는 느낌을 받았다”며 달라진 스타일을 암시했는데, 그의 이전 영화들과 달리 <버닝> 초반부터 드러나는 다채로운 카메라 워크는 그래서 가능했을 것이다. 또한 영화 속에서 새벽과 저물녘, 이른바 영화인들이 매직 아워(Magic Hour)라고 하는 시간대가 영화에 자주 등장하는 탓에 디지털카메라는 그에 빠르게 적응할 수 있게끔 했을 것이다. 이제 ‘그래도 필름 때깔이 더 낫다’는 막연한 얘기를 하는 사람들은 완전히 사라졌다. 경제성과 효율성 등 산업과 시스템의 구조를 넘어, 미학적 고려에서도 진정한 디지털 시대가 열린 것이다.
 
<곡성> 촬영현장, 사진 속 인물은 홍경표 촬영감독

Technology 3 절반의 성장, 3D 입체영화
디지털 시대와 함께 더 큰 꽃을 피우리라 생각된 3D 입체영화(이하 ‘3D 영화’)의 경우, 그 정점이었다고 할 수 있는 <아바타 Avatar>(제임스 캐머런, 2009) 개봉 이후의 파급력을 잃어가고 있다. 일단 개봉 편수 자체가 해마다 줄고 있고, 3D 스포츠 중계가 도입된 런던 올림픽이 열린 2012년까지 매년 50% 이상의 괄목할 만한 신장세를 보인 3D TV 또한 마찬가지다. 
<그래비티 Gravity>(알폰소 쿠아론, 2013) 정도를 제외하고는 사실상 <아바타> 이후 획기적인 3D 영화가 등장하지 못했고, 3D 안경을 써야 하는 관람상의 불편함은 여전히 지적된다. 폭발적으로 성장하리라 여겨지던 3D 영화 시장은 ‘오리지널 3D 영화’ 제작보다는 ‘이 영화는 3D 버전도 제공됩니다’라는 식으로 특정 인기 영화에 어떤 ‘옵션’으로 자리 잡아가는 분위기다.
한국 최초의 3D 영화로 기록된 작품은 이규웅 감독의 <천하장사 임꺽정>(1968)이다. 신영균, 박노식, 윤정희, 태현실 주연의 <천하장사 임꺽정>은 전체 상영시간 90분 중 후반부에 10여 차례 입체영상을 선보였다. 두 번째는 임권택 감독의 <몽녀>(1968)로 <천하장사 임꺽정>을 촬영하기도 했던 장석준 촬영감독이 전작의 결점을 보완해 발명한 ‘판 스코프 3D 입체 촬영기’로 만들어진 입체영화다. 이후 김인수 감독의 <공포의 축제>(1986) 등 3D 영화 제작 붐이 일기도 했지만 인상적인 결과물은 없었다. 그로부터 한참 세월이 흘러 영화진흥위원회의 주도로 국내 최초 디지털 입체 실사 단편영화인 최익환 감독의 <못>(2009)이 제작됐고, ‘3D 에로영화’를 표방한 <나탈리>(주경중, 2010)와 모팩 스튜디오가 참여한 <7광구>(김지훈, 2011)가 만들어졌으며, 김용화 감독이 이끄는 덱스터 스튜디오에서 한국영화 최초로 100% 컴퓨터그래픽으로 만들어진 고릴라 링링 캐릭터가 등장하는 <미스터 고>(2013)를 개봉하며 정점을 찍었다.
여기서 3D 영화를 만드는 방식은 크게 두 가지다. 첫 번째는 ‘리그(rig)’ 시스템을 이용해 촬영 단계부터 3D 영화를 만드는 것이고, 두 번째는 기존 방식대로 촬영한 영화를 후반작업 과정에서 ‘컨버팅’을 통해 더욱 저렴하게 3D 영화로 만드는 것이다. <7광구>가 후자의 방식으로 만들어진 3D 영화라면, <미스터 고>는 전자의 방식으로 만들어진 3D 영화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나탈리>를 시작으로 <7광구>를 거쳐 <미스터 고>에 이르기까지 국산 3D 영화 중에서 시장의 환대를 받으며 제작비를 회수한 영화는 없다. 게다가 <미스터 고>의 경우 개봉 후 일주일 정도까지, 정작 3D 상영관 상영은 전체 상영의 15% 정도만 차지했다. 2D 상영이 85%에 이르렀기에 <미스터 고>가 본격 3D 영화라는 사실을 인지하는 관객 자체가 별로 없었다. 이처럼 2D 상영이건 3D 상영이건 상영 환경의 개선이라는 문제가 여전히 대두된다.
 
<미스터 고>

And... 새로운 기술이 더 새로운 영화를 가능하게 할까
지상파 방송국 또한 아날로그 방식과 이별한 지 오래다. 우리가 매주 지겹도록 보고 있는 TV 리얼리티 예능 프로그램 현장에서 거의 각 인물당 4K 동영상 촬영이 가능한 DSLR 카메라가 10대 넘게 투입되는 모습, 혹은 출연자가 ‘고프로’로 대표되는 액션캠을 하나씩 소지하고 있는 모습은 너무나 익숙한 풍경이 됐다. 액션캠이란 초소형 광각 캠코더를 이르는 말로, 작고 가볍고 방수 능력까지 있어 아웃도어 촬영 시 역동적인 촬영이 가능하게 한다. 이처럼 디지털카메라는 기동성을 무기 삼아 시간과 비용 절감에 크게 기여했고, 과거 불가능했던 촬영도 가능하게 했다. 불가능을 극복하는 촬영에, 이제는 드론 촬영도 TV를 넘어 한국영화 깊숙이 들어오고 있다. 디지털 시대의 도래와 함께 영화와 TV의 경계, 2D와 3D의 경계, 촬영 현장과 후반작업 현장의 경계는 사라지고 있다. 그렇다면 이제 하나의 질문이 남았다. 과연 기술적으로 새로운 시대의 도래가 진정 새로운 영화와의 만남을 앞당겨줄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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