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피츠버그에 영화전용극장이 개관하다 1905년 6월 19일

by.정성일(영화감독, 영화평론가) 2017-09-20조회 5,874
약간 우회해보자. 이상한 미신이 떠돌고 있다. 좋은 영화는 재미있는 영화이며, 재미있는 영화는 대중이 좋아하는 영화이며, 그 증거는 박스오피스의 숫자가 증명한다는 것이다. 올해 여름 나는 그저 숫자만 들여다보면서 반문하지 않을 수 없었다. 정말 당신들께서 보고 싶어 하는 숫자만큼 <군함도>(류승완, 2017)는 개봉한 것입니까? 그래서 전국 2,575개 스크린 중에 2,019개에서 상영 중입니까? (2017년 7월 29일 토요일 영진위 통계) 다른 질문도 있다. <옥자>(봉준호, 2017)를 30만 7,346명이 보는 동안 김수현의 <리얼>(이사랑, 2017)을 46만 9,803명이 보았다(같은 날 통계). 그러면 <리얼>이 <옥자>보다 152퍼센트 더 재미있고 좋은 영화입니까? 
물론 당신은 다소 짜증스럽게 대답할 것이다. 이 바보야, 문제는 독과점이잖아. 영화의 경제학이 아무리 복잡하게 작동해도 결국 요점은 (배급이라고 부르는 자본의) 순환과 회전에 있는 것이다. 차라리 이렇게 말하고 싶다. 자본으로서의 영화를 영화답게 만든 것은 극장이 여기에 개입하면서부터 시작되었다. 뤼미에르 형제에 의해 영화가 발명되기는 했지만 자동적으로 극장이 마치 조건 반사하듯이 생겨난 것은 아니다. 산업 안에서 그런 일은 벌어지지 않는다. 영화는 살롱에서 막간에 여흥처럼 상영되거나, 무대에서 보드빌 공연을 하면서 다음 공연을 위한 휴식 시간 동안 잠깐 동안의 구경거리로 제공됐다. 말하자면 영화만을 상영하는 극장은 아직 지구상에 없었다.
1905년 무렵의 이야기. 미국 펜실베이니아의 피츠버그에서 극장을 운영하던 해리 데이비스는 계속해서 악재에 부딪혔다. 심지어 인근에 경쟁자 B. F. 키스가 나타나 훨씬 흥미로운 보드빌 공연을 올리면서 무언가 대책을 찾아야 했다. 그래서 처남인 존 P. 해리스를 끌어들여 극장 운영을 의논했다. 이때 해리스는 어차피 보드빌 공연을 올릴 돈도 없는데 영화만 상영하면 어떻겠느냐는 발상의 전환을 했다. 이걸 영화사에서는 ‘피츠버그 아이디어’라고 부른다. 상황이 더 나쁜 건 그만 소유하던 애비뉴 극장에 불이난 것이다. 그래서 스미스필드가(街)에 96석 규모의 새 극장을 1905년 6월 19일 오픈하면서 ‘니켈로디언(Nickelodeon)’ 극장이라는 새로운 이름을 지었다. 입장료가 5센트(Nickel)라는 데서 만든 이름이다. 니켈로디언 극장은 하루 종일 오직 영화만 상영하기 시작한 최초의 극장이었다.
그러면 당신은 반문할 것이다. 왜 최초의 영화 ‘전용’ 극장이 영화 산업의 중심인 뉴욕이나 보스턴이 아니라 피츠버그에서 시작하게 되었을까? 이유는 간단하지만 다소 모골이 송연해진다. 아직
20세기 초였다는 사실을 염두에 두고 읽어주기 바란다. 뉴욕이나 보스턴은 일주일 내내 일하고 오직 일요일에만 쉬는 ‘주일’ 휴일 제도가 도입되었지만 비교적 시골인 피츠버그는 느슨한 노동
제도에 따라 하루 종일 영화만 상영하는 니켈로디언 극장에도 주중에 아무 때나 올 수 있는 관객이 있었고 아침부터 저녁 늦게까지 늘 관객이 이어졌다. 여기에는 한 치의 오차도 없는 노동 제도와 여가 사이의 정치경제학이 작동되고 있다. 보통 10편에서 12편 정도를 묶어서 한 회차 프로그램을 만들었다. 처음에는 정말 영화만을 보러 올까, 했지만 한 해 동안 같은 방식의 영화전용극
장은 100개로 늘어났고 순식간에 1908년까지 미국 전역에 1만개의 극장이 생겼다. 입장료는 고작 5센트였지만 이 사업은 티끌모아 태산이 되었다.
이때 이 시기에 이 사업에 일제히 뛰어든 이름을 유심히 살펴볼 필요가 있다. 아돌프 주커, 마커스 로우, 칼 램믈, 해리 워너. 그들은 모두 유럽에서 막 이민 온 장사꾼들이었다. 그리고 아돌프 주커가 파라마운트를 세우고, 마커스 로우가 MGM의 초석을 닦고 칼 램믈이 유니버설 영화사를 세우고 해리 워너가 워너브러더스를 세우기까지는 채 얼마 걸리지 않았다. 옛 선현의 말씀, 양에서 질로의 ‘나쁜’ 도약. 영화 역사학자인 찰스 머서가 ‘니켈로디언 극장이 개관한 날은 진정한 의미에서 미국영화사가 시작한 날이다’라고 한 말은 참으로 의미심장한 선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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