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학자 루드비히 비트겐슈타인은 마치 명제를 말하듯이 미학적 관점에서가 아니라 윤리적 관점에서 유일하게 볼만한 영화는 웨스턴뿐이다, 라고 말했다. 다소 수수께끼 같은 이 말은 우리를 난처하게 만든다. 나는 비트겐슈타인이 염두에 두고 말한 웨스턴이 어떤 영화인지 알지 못한다. 분명한 것은 웨스턴은 영화가 창조해낸 가장 위대한 세계 중 하나라는 것이다. 그리고 그 위대한 첫 번째 발명은 에드윈 S 포터가 <대열차강도 The Great Train Robbery>(1903)를 만들었을 때 시작되었다.
에드윈 S 포터에 대해서 알려진 것은 영화사에서의 그 명성에 비해서 그렇게 많지 않다. 그는 선박 엔진 회사의 전기 부서에서 일을 시작했다. 램프 관련 부서에 있던 포터는 1896년 극장 영사 기사로 일을 하다가 1899년 토머스 에디슨 회사로 옮겼다. 그때는 아직 영화제작 과정이 분업화되지 않았고 포터는 여러 종류의 일을 하면서 몇 편의 영화 장면들을 연출하게 되었다. 그러면서 조르주 멜리에스의 영화를 보았다. 그는 1902년 <미국 소방수의 삶 Life of an American Fireman>을 연출했고 이 영화는 큰 성공을 거뒀다. 그러자 에드윈 S 포터는 좀 더 야심적인 영화를 만들기로 결심했다. 7개의 신으로 이루어진 6분 10초짜리 <미국 소방수의 삶>의 두 배에 이르는 <대열차강도>는 (18프레임 상영을 기준으로) 상영시간 12분에 13개의 신과 에필로그에 해당하는 마지막 장면을 더했다.
이야기는 간단하다. 강도들이 전신국에 침입해 열차를 세우고 그 열차를 타서 전신환을 훔친다. 그리고 열차를 세운 다음 승객들을 모두 내리게 해서 금품을 요구한다. 그 와중에 도망치려던 승객을 총으로 쏘기까지 한다. 그러는 동안 전신국 직원의 딸이 돌아와 아버지가 묶인 것을 풀어주고 직원은 이 사실을 알린다. 민병대의 추적이 시작되고 강도들은 숲에서 총격전 끝에 전원 사살당한다. 모든 장면은 초기 영화의 방법론을 따라 액자 형식의 무대처럼 꾸며졌고(tableau_composition) 디테일을 묘사하는 편집 방법은 아직 이루어지지 않았다. 하지만 에드윈 S 포터는 <대열차강도>를 만들면서 새로운 시도를 했다. 이 영화는 세트 촬영과 로케 촬영을 오가고 있으며 달리는 열차 바깥으로 사람을 집어던질 때 사람 모양의 인형 더미를 사용했다. 오늘날 당연하게 여겨지는 이 더미의 사용은 이후 영화에서 가장 중요한 소도구 중 하나가 되었다. 달리는 열차는 신이 바뀌더라도 동선을 맞추었고 이 ‘부드러운’ 동선은 바로 한 해 전에 만들어진 <미국 소방수의 삶>과 비교해보면 거의 혁명적인 수준의 도약을 이루었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하지만 가장 놀라운 것은 마지막 장면이다. 강도들은 숲에서 모두 사살되었고 영화가 끝났다고 생각했는데 갑자기 정면으로 찍은 강도단 두목 저스터스 D 번즈가 등장한다. 허리 정도에서부터 보여주는 반신상의 사이즈. 줄거리와도 아무 상관이 없고 지금까지 진행된 것과도 전혀 다르게 찍었다. 마치 이야기 바깥으로 나와버린 것만 같은 모습. 배경도 아무것도 없는 벽뿐이어서 장소도 짐작조차 할 수 없다. 게다가 약간 화가 난 듯한 표정이 우리를 불안하게 만든다. 금방 무슨 일이라도 저지를 것만 같은 얼굴. 그런데 갑자기 총을 꺼내 들더니 우리를 향해 총을 쓴다. 그리고 올라오는 자막 ‘THE END’. 이 무법자가 법에 반항하기라도 하듯, 정의에 항의하기라도 하듯, 민병대에게 죽은 자신들의 운명에 대해 복수하기라도 하듯, 그렇게 정면으로 우리를 향해 총을 쏠 때 그건 분명히 자신들의 죽음을 즐긴 우리들의 기쁨을 향해 한 방 방아쇠를 당긴 것이다. 이 장면이 (공식적으로는) 마지막에 붙어 있지만 에드윈 S 포터는 첫 장면에 옮겨 붙인 다음 상영해도 상관없다, 고 단서를 달았다. 분명히 에드윈 S 포터는 이 마지막 장면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얼마나 위험한지, 얼마나 전복적인지, 그 불경스러움을 잘 알고 있었음에 틀림없다. <대열차강도>는 우리가 알고 있는 것보다 훨씬 많은 것을 발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