먼저 고백으로 시작해야 할 것 같다. 나는 영화를 볼 때 화면이 클수록 좋다고 생각한다. 물론 화면이 크다고 해서 후진 영화가 훌륭해지지는 않는다. 하지만 나에게 누군가 IMAX 상영을 위한 영화 100편을 마음대로 선택할 수 있는 백지수표를 내민다면 앉은 자리에서 당장 채워 넣을 수 있다. 아마 그건 나만의 심정이 아닐 것이다. 거대한 화면에 대한 열렬한 동경은 영화사가 시작되었을 때부터 기록되어 있다.
1900년 파리 만국박람회는 20세기를 맞이한다는 흥분에 가득 차 있었다. 그건 우리들이 21세기를 맞이하던 2000년의 소란을 떠올려보면 될 것이다. 그때 박람회는 에스컬레이터를 처음 선보였고 새롭게 주목받기 시작한 아르누보 작품들의 전시장을 내세웠다. 하지만 파리 대중의 관심을 끈 것은 두 개의 신기한 스크린이었다. 그때 막 선보인 영화는 자기의 미래를 알지 못했다.
발길을 멈춰 세운 첫 번째 스크린은 ‘시네오라마’라는 원형 돔 형식의 360도 화면이었다. 오늘날 이 스크린은 테마파크에서 천문대를 흉내 내어 별자리를 보여주는 과학 화면으로 볼 수 있거나 종종 미술관에서 인스톨레이션을 위해 동원된다는 점에서 아직도 생존해 있다. 그러나 진정한 이벤트는 5월 15일에 벌어졌다. 박람회는 뤼미에르 형제의 영화에 깊은 관심을 보였다. 자문위원이었던 알프레드 피카르는 뤼미에르 형제에게 당신들의 영화를 대형 화면으로 박람회 중에 상영하자는 제안을 했다. 뤼미에르 형제는 항상 카페 안의 작은 스크린에서 상영하는 반복적인 상영에 대해 새로운 탈출구가 필요하다고 느끼고 있었기 때문에 이 제안은 그들이 기다리는 것이기도 했다. 사실 처음에는 양쪽 모두 어느 정도 크기의 대형 화면에서 상영해야 할지 판단할 수가 없었다. 박람회 안에서 상영되어야 했고, 박람회뿐만 아니라 어디서도 그들이 상상하고 있는 크기의 대형 화면을 갖춘 극장은 아직 존재하지 않았기 때문에 설치가 가능한 최대한 넓은 부지를 정한 다음 거기에 마는 스크린을 세우기로 했다. 그들은 박람회 안의 400평방미터 너비의 공간에서 상영하는 데 합의했다.
그런 다음 거기에 스크린을 세웠다. 이 스크린은 크기가 가로 25미터에 높이가 15미터가 되었다. 아마 느낌이 잘 오지 않을 것이다. 이렇게 설명하겠다. 우리들이 오늘날 보는 IMAX 표준 사이즈는 가로 22미터에 높이 16.1미터로 규정하고 있다. 그러니까 이미 117년 전에 파리에서는 오늘날 우리들이 보는 IMAX 사이즈로 뤼미에르 형제의 영화를 보았던 것이다. 현재 지구상에서 가장 큰 IMAX 극장의 스크린 사이즈는 시드니 달링 하버에 있는데, 가로 35.72미터에 높이 29.57미터이다. 뤼미에르 형제는 여기서 15편의 영화를 묶어 상영 시간 25분의 프로그램을 구성했다.
문제는 이렇게 커다란 스크린에서 상영할 필름이었다. 뤼미에르 형제는 여러 가지 조건을 고려하여 75mm 사이즈를 제안하였다. 그러나 정작 난관에 부딪힌 것은 필름이 아니라 영사기였다. 상영 날짜에 맞추어 영사기를 새로 제작하는 과정에서 테스트 결과는 실패로 끝났고 결국 35mm 사이즈 상영으로 결정하였다. 이날 밤 이 대형 스크린으로 상영하는 프로그램을 보기 위하여 2만 5,000명의 관객이 몰려왔다. 유감스럽게도 문제는 거기서 끝나지 않았다. 그날따라 몹시 심한 바람이 불어서 상영 도중 스크린이 쓰러지는 사태까지 벌어졌다. 다행히도 사고로 이어지지 않았고 뤼미에르 형제는 마지막 영화까지 모두 상영을 마쳤다. 이날은 하나의 꿈을 보여준 날이었다. 그 꿈이 실현되기까지 아직은 긴 시간이 필요했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