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2개의 생크림 파이를 서로에게 집어던지는 ‘파이 던지기’ 난투극 씬이 등장하다. 1916년 11월 13일

by.정성일(영화감독, 영화평론가) 2020-11-06조회 11,305
아무래도 몇 번이고 반복해서 영화사의 순간들을 거슬러 올라와야 할 것 같다. 어쩔 수 없는 일이다. 세계 영화사에서 이 두 개의 발명을 그냥 지나칠 수는 없기 때문이다. (나는 다른 또 하나의 발명을 뒤이어 소개할 것이다) 고유한 순간들. 그런 다음 마치 하나의 장르처럼 확장되어나간 기호들. 먼저 첫 번째 발명에 대해서 말하겠다. 파이 던지기. 영어로는 ‘Pie Fight(파이 난투극)’ 하나의 용어가 된 광경. 아마도 영화에서 상대방의 얼굴에 파이를 집어 던지는 장면을 보았을 것이다. 영화에서 보지 못했다면 항의의 의미로 정치인, 혹은 누군가에게 연설의 순간에 그를 향해서 집어던지는 장면을 뉴스에서 보았을 것이다. 한국에서는 그 변형이랄 수 있는 계란 던지기가 있다. 파이 던지기의 장면들은 이제 하나의 영화사가 될 만큼의 역사가 되었다. 
 

영화에서 파이를 가장 먼저 던진 사람은 맥 세네트였다. 그때 키스톤 스튜디오에서 그걸 유심히 보던 사람이 있었다. 찰리 채플린. 아마도 키스톤 스튜디오는 채플린에게 영화 학교였을 것이다. 맥 세네트의 영화에서 먼저 던졌지만 그는 이것만으로 하나의 씬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하지 못했다. 채플린은 1916년에 9편의 단편영화를 연출하고 주연을 했다. 그 중 상영시간 23분의 <촬영 현장에서(Behind the Screen)> 속의 마지막 클라이맥스를 파이던지기로 장식했다. 줄거리는 간단하다. 영화촬영 현장에 소품을 옮기는 일을 하는 찰리는 미숙한 실수와 악당 소품 팀장의 구박으로 온갖 실수를 반복하다가 마지막에 여차저차 우여곡절 끝에 서부극 영화 촬영 현장에서 찰리와 무대 팀장은 대역으로 서로에게 생크림 파이를 집어던지는 연기를 하게 된다. 그때 마침 옆 스튜디오에서는 17세기 프랑스 사극을 촬영 중이었고, 바깥에서는 해고당한 무대 노동자들이 다이너마이트를 들고 와서 모두 날려버릴 참이었다. 찰리와 무대 팀장은 32개의 파이를 서로 주고받는데 (아마 촬영에는 더 많이 사용되었을 것이다) 파이가 옆 현장까지 날아가 왕과 왕비와 주교도 파이를 뒤집어쓰고 마지막에는 촬영 현장이 폭발된다. 관객들은 내용을 기억하지 못해도 이 파이장면을 보기 위해 <촬영 현장에서>를 다시 보러 왔다. 생크림 파이. 맛이 있기는 하지만 아무도 손에 묻히기를 원치 않는 끈적거리는 축축함. 가까스로 균형을 유지하면서 자기 모습으로부터 금방이라도 흘러내릴 것만 같은 액체 직전의 표면장력. 그걸 집어던져서 상대의 얼굴과 옷을 망쳐놓는 무례한 퍼포먼스. 여기저기서 파이 던지기를 가져다 쓰기 시작했다. 하지만 정작 찰리 채플린은 그런 다음 이 영화 이후 파이 던지기 난투극에 관심을 잃었다. 
 

파이 던지기를 스펙터클로 만든 것은 ‘뚱뚱이와 홀쭉이’ 컴비로 더 유명한 (스탠) 로렐과 (올리버) 하디의 <세기의 전투>(1927년)에서 였다. 여기서 파이 난투극이 시작되자 3,000개의 크림 파이를 서로 집어던졌다. 이때 파이 던지기는 영화의 문법에서 완전히 과잉하는 소비의 그로테스크한 익살이라는 것을 생각해야 한다. 집어던지는 장면과 상대방이 맞는 장면은 한 쇼트 안에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그 둘을 나눠찍는 순간 하나의 파이를 던져서 상대방이 맞는 장면을 찍을 때 언제나 현장에는 두 개의 파이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게다가 한 번 던진 파이는 두 번 쓸 수 없다. 이건 낭비의 퍼포먼스이다. 정식화시킨 것은 아니지만 대중들이 파이 던지기를 보면서 느껴보는 통쾌한 기쁨은 상대방에 대한 가학적 조롱에서 오는 것이 아니라 (물론 그것도 포함되어 있을 것이다. 크림 파이를 뒤집어 쓴 모습이 만들어내는 우스꽝스러운 몰골의 스펙터클, 아마도 그것이 정치적 퍼포먼스의 목표일 것이다) 오로지 생산만을 목표로 하는 자본주의에서 낭비라고 할 수밖에 없는 퍼포먼스의 순간에 가져보는 일시적인 카니발의 향연의 이미지에의 과소비일 것이다.
 

토키 영화가 시작하자 여기에 집어던지고 난투극이 벌어지는 상황을 더 실감나게 연출하기 시작했다. ‘파이 난투극’의 영화적 형식은 ‘세 얼간이(Three Stooges)’가 등장하는 <달콤한 파이, 파이>(1941년)에서 거의 완성되었다. 파이의 개수가 많은 것은 아니지만 5분 30초 동안 레스토랑의 신사숙녀들이 서로에게 마치 이어달리기를 하듯이 쉬지 않고 집어던진다. 이때 리듬을 만들어내는 것은 던지는 파이가 아니라 그걸 맞는 순간 상대방의 얼굴에서 나는 철썩! 하는 끈적거리는 크림 액체의 사운드 효과이며 마치 스크린에서 무언가 흘러내리는 것만 같은 기분마저 느끼게 만든다. 물론 그런 다음에도 영화에서 계속해서 파이를 던졌다. 브레이크 에드워즈의 <그레이트 레이스>(1965년)에서는 마치 기록을 세우듯이 4,000개의 파이와 엄청나게 커다란 파이를 상대방에서 집어던지는 씬이 등장한다. 이 목록에서 가장 아이러니한 순간은 스탠리 큐브릭이 연출한 <닥터 스트레인지 러브, 혹은 어찌하여 나는 걱정을 그만두고 수소폭탄을 사랑하게 되었는가>의 파이 던지기일 것이다. 여기서 큐브릭은 원폭으로 종말을 맞이하는 인류의 마지막 날에 어울리는 향연을 보여준다. 나는 한정 없이 파이 던지기의 목록을 늘어놓고 싶지만 여기서 참아야 할 것 같다. 다만 두 편의 애니메이션 시리즈를 첨언해야 할 것 같다. 하나는 ‘톰과 제리’이고 다른 하나는 ‘심슨 가족’이다. 약간 흥분하면서 말하자면 파이 던지기를 보는 순간 내가 지금 영화를 보는구나, 라고 감격하게 된다. 파이 난투극은 영화라는 향연에 초대받았음을 몸으로 느껴보는 시간이기 때문이다. 그렇지 않은가요?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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