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월 김중현, 2017

by.이승민(다큐멘터리 연구자) 2018-01-31
이월 스틸이미지, 마루에서 볕을  쬐는 여자
2월은 겨울의 막바지로 봄이 오기 직전의 달이기도 하지만, 긴 겨울을 지나오면서 뼛속까지 냉기가 배인 달이기도 하다. <이월>은 봄에 대한 기대보다 몸에 깊게 스민 냉기를 담은 영화이다. 냉기를 다루되, 냉기에 감정을 담아 설명하거나 판단을 강제하지 않는다. 그냥 인생에 있어 이월의 냉기 그 자체를 오롯이 담고 있다. 그래서일까? 영화는 주인공이 계속 되뇌는 말처럼 몹시 “춥다.” 아주 잠시 온기를 느끼는 순간도 여지없이 ‘겨울’임을 각인시킨다. 주인공 민경은 이월을 살아가는 인물이기도 하지만, 이월 그 자체이기도 하다. 냉기로 인해 생겨난 단단한 얼음이기도 하고, 얼음을 깨고 올라오려는 새싹이기도 하다. 단, “자라지 못하면 이름이 없는” 존재이다. 영화는 이월이 가진 냉기와 함께 이월의 이중성 혹은 역설을 담는다. 여러 결의 모호함을 질문으로 던지면서. 

영화는 소리와 함께 시작한다. 방안에서 흐르는 따뜻한 음악 소리, 날카로운 겨울바람 소리 그리고 찬 공기 속에 손 비비며 후-하고 내쉬는 민경의 입김 소리가 들린다. 이어 까치발로 창살에 매달려 방 안을 들여다보던 민경은 조용히 웃는다. <이월>의 오프닝은 영화를 보는 동안 내내 마주하는 민경을 응축하고 있다. 차가운 겨울 머물 곳을 찾는 민경은 동정과 연민을 바라지 않고 자기를 지키며 자기 방식으로 살아간다. 그러면서 종종 정체불명의 희미한 모나리자 미소를 짓는다.   

다음 장면에서 민경은 방 안으로 들어온다. 음악은 자살을 시도한 친구 여진이 틀어놓은 것이고, 여진은 유언 대신 중국집 쿠폰을 남기고, 방에 누워있다. 민경은 그런 여진을 가만히 바라보며 특유의 웃음을 짓고 숨을 내뿜는다. 처음에는 간지럽히듯이, 다음은 생명을 불어넣듯이 긴 숨을 쉰다. 그러나 영화는 민경이 왜 웃음을 머금고 긴 숨을 여진에게 내뿜는지 알려주지 않는다. 오히려 영화 속 여진이 마저 민경에게 소리쳐 묻는다. “왜 웃어? 왜 웃냐고?” 민경의 웃음은 그리 단순하지 않다. 마치 민경이 흥얼거리는 노래가 그냥 음악이 아니듯이. 

민경 곁에는 이처럼 낯선 결을 동반한 오브제는 더 있다. 앞서 언급한 중국집 쿠폰과 원피스 그리고 5만 원이 그들이다. 따뜻함과 동시에 차가움이 내재되어 있다. 함께한 기억으로, 뭔가 남겨주고 싶어서, 선물이자 용돈으로 건넨 물건이지만, 그 속에는 연민과 동정 그리고 대가가 존재한다. 주는 자와 받는 자 간에 위태로운 의미가 교차한다. 그 ‘위태로움’의 경계에서 민경은 이 겨울을 나고 있다.   
 
민경은 좀체 속내를 드러내지 않는다. 민경 자체도 그렇지만 영화도 민경의 내면을 아는 척하지도 들추지도 않는다. 그런 민경이 두려움을 직접적으로 드러내는 순간이 있다. 그녀는 여진이 들려준 이모할머니가 빠져 죽었다는 웅덩이를 무서워한다. 미쳐버린 이모할머니 이야기 때문인지, 늪과 같은 웅덩이의 존재 때문인지, 아님 웅덩이 속에 비친 자기 모습 때문인지 민경은 웅덩이를 두려워한다. 어쩌면 민경 자신과 미쳐버린 이모할머니의 모습이 겹쳐 보여서 일지도 모르겠다. “미치면 아프지 않다”는 민경은 미칠까 봐 두렵고 동시에 미치지 않아 아픈 거다. 그저 아프지 않은 척할 뿐이다. 그녀가 보이는 공격적인 행동과 말은 한 번만 더 곱씹어보면, 공격이 아니라 상처의 흔적이자 상처받은 자의 방어이다. 친구의 자살시도를 목격한 그 순간을 잊지 못하고 있음을 노래로, 자살의 방법으로, 원피스로 말하고 있는 거다. 차가운 냉기가 스며든 순간의 기억들은 자신이 상처받는 또 다른 순간에 공격이 되어 방어로 드러난다.  

영화에서 세 번 배경음악이 등장한다. 음악으로 거의 감정을 강제하지 않는 영화가 희미하게나마 감정을 부여하는 세 장면은 다음과 같다. 첫 번째는 민경이 몰래 들어간 자기 집에서 빚 청구서 더미를 볼 때이고, 두 번째는 여진의 집에서 도망 나오다 웅덩이에 빠질 때이다. 그리고 마지막은 컨테이너 박스가 하늘을 날 때다. 세 경우 모두 민경이 막바지에 몰렸을 때이다. 특히 웅덩이는 그녀가 잠시 온기를 느끼려는 순간 내리치는 냉기와 함께한다. 여진과 생애처럼 보름밥을 먹는 순간, 자신과 꼭 닮은 성훈과 함께 지내는 법을 익혀가는 순간, 착각하지 말라고 찾아온다. 웅덩이는 온몸에 냉기가 배여 있는 그녀조차도 느끼는 두려움의 형상이다. 
 
민경은 머물 곳이 없다. 집은 이미 보증금까지 날린 상태이고, 여진의 집은 동생의 등장으로 쫓겨나고, 아저씨 집도 아저씨의 사고로 머물 수 없다. 그것만이 아니다. 만둣집에서 쫓겨나고, 학원에서도 버티다 나온다. 민경은 그때마다 컨테이너로 찾아든다. 컨테이너로 찾아들기 전 사이 시간은 일종의 “비변증법적 시간”이다. 별다른 사건도 행동도 없이 먹고 자는 시간들을 보내고 그것마저 거부당할 때 민경은 컨테이너로 찾아든다. 온기라곤 없는 곳에서 추위에 떨며 웅크리며 잔다. 컨테이너는 웅덩이와 달리 그녀의 마지막 보류의 공간이다. 그러나 곧 묻게 된다. 민경에게 웅덩이와 컨테이너는 다른 곳이었을까? 마지막 춥고 어두운 컨테이너에서 민경은 성훈이를 부탁하는 진규의 전화를 받고 여진의 자살시도 때 들은 노래를 부르며 잠이 든다. 이어 거대한 균열과 함께 컨테이너가 하늘을 난다. 환한 분위기와 달리 영화는 마냥 해피엔딩 같지가 않다. 컨테이너 박스 속 민경은 어쩌면 웅덩이 속으로 들어간 건 아닐지, 그녀의 환한 웃음이 이제 통증을 느끼지 못한 (미친) 단계로 들어선 건 아닌지, 혹은 삶에서 완전히 이탈한 것인지 모호하다. <이월>은 치우치지 않으면서 삶의 냉기가 가진 양면을 모두에서 만나게 하는 힘 있는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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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이월’을 달력의 2월이자 이월하다의 이월로 읽어낸다면, 남겨진 아이 성훈이 너무 아프다. 민경과 꼭 닮은 성훈은 민경의 어린 시절 같기도 하고, 민경과 같은 냉기를 고스란히 담아 겪어나갈 다음 세대일 터. 2월이 3월로 이월되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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