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영화걸작선]바람불어 좋은날: 7월의 영화 이장호, 1980

by.남동철(부산국제영화제 수석프로그래머) 2018-07-17조회 11,312
바람불어 좋은날

1980년에 만들어진 <바람불어 좋은 날>은 안성기, 유지인, 김보연, 임예진, 김영애 등 익숙한 중견 배우들의 풋풋한 모습을 볼 수 있는 영화이다. 최근 극장에서 이 영화를 다시 볼 기회가 있었는데 임예진의 앳된 얼굴은 그녀가 한 시대를 풍미한 하이틴스타였다는 걸 한눈에 실감하게 했다. 영화가 만들어질 당시에 이들 배우들이 후일 어떻게 성장할지 알 수 없었겠지만 <바람불어 좋은 날>은 배우들의 면면만 놓고 봐도 오래 기억될 작품이다. 앞서 언급한 배우들 외에도 김성찬, 이영호, 김희라, 박원숙, 최불암, 김인문 등도 인상적인 연기를 보여줬는데 그들 모두의 경력에서 중요한 영화가 됐으리라 짐작할 수 있다. 이렇게 많은 배우가 조명을 받은 이유는 <바람불어 좋은 날>이 다양한 캐릭터를 보여주면서 그들 중 한 사람도 허투루 낭비하지 않기 때문이다. 덕배(안성기), 춘식(이영호), 길남(김성찬)이라는 세 청년의 이야기가 중심을 이루지만 당시 시대상을 조망할 수 있는 남녀노소가 빠짐없이 나와, 작은 타일 조각이 모여 만드는 거대한 벽화를 보는 느낌을 준다. 목소리를 높여 뭔가를 외치는 영화가 아닌데도 <바람불어 좋은 날>은 당대 관객에게 묵직한 울림을 주면서 당시 영화인에게 지향점을 제시하는 작품이 됐다.

바람불어 좋은 날 스틸

바람불어 좋은 날 스틸
 
<바람불어 좋은 날>이 그리는 시대는 1970년대 강남 개발이 시작된 뒤의 서울이다. 영화에 등장하는 한강변 풍경을 보면 강 건너편엔 아파트들이 보이지만 등장인물들이 사는 쪽은 아직 개발이 덜 된 지역이다. 부동산 개발로 벼락부자가 된 김회장(최불암)은 말한다. “남들이 뭐라 손가락질하는지 안다. 배추 장사 하던 무지렁이가 악랄한 수단을 써서 졸부가 됐다고. 하지만 내가 안 한다고 세상이 그런 짓 안 할 리 없다. 나 말고도 그런 짓 할 놈은 많다.” 김회장이 어떻게 돈을 모았는지 영화는 더 자세히 설명하지 않지만 땅을 뺏긴 노인이 목을 매 자살을 하는 장면을 보면 충분히 짐작이 간다. 그런 김회장의 손이 이발소 미스 유(김보연)의 허벅지를 주무를 때 춘식이 느낀 혐오감은 노인의 자살을 목격한 뒤 살의로 발전한다. 그러나 김회장이 ‘악’이라고 춘식이 ‘선’인 것도 아니다. 김회장은 역겨운 존재지만 미스 유에게 희망이기도 하다. 병든 아버지의 치료비를 마련하고자 미스 유는 김회장의 품에 안긴다. 미스 유는 거짓이라도 날 사랑한다 말해달라고 하고 김회장은 그녀에게 진심으로 사랑한다고 답한다. 춘식이 김회장의 몸에 칼을 그을 때 미스 유의 희망도 같이 찢어진다.
 
바람불어 좋은 날 스틸
 
김회장이 상징하는 천민자본주의의 탐욕스런 모습 반대편에 상류 사회의 매혹을 전시하는 인물 명희(유지인)가 있다. 명희의 의상은 번쩍거리거나 매끄럽거나 하늘거린다. 의상 자체가 ‘유혹’이라는 단어의 대체물처럼 느껴진다. 명희와 덕배가 강가에서 데이트를 하는 장면은 이 영화의 잊을 수 없는 대목 중 하나다. 명희의 치마가 바람에 날려 팬티가 보일 만큼 펄럭인다. 마릴린 몬로가 <7년만의 외출>에서 지하철 통풍구 바람에 치마를 날리는 장면 못지않다. 명희는 키스를 가르쳐준다며 입술을 내민 덕배를 바보로 만든다. 덕배는 내 그럴 줄 알았다며 자신이 올라갈 수 없는 나무에 올라가지 않기로 한다. 명희가 대변하는 자본주의의 모습은 그녀가 디스코 클럽에 가는 장면을 통해 더 선명히 드러난다. 매혹적이지만 선정적이고 위험한 그녀에게 덕배는 어울리는 짝이 될 수 없다. 덕배는 디스코 클럽에서 농악을 떠올리며 몸을 흔든다. 덕배의 춤은 엉뚱한 박수를 받지만 그 이상 발전할 수 없다. 덕배가 돌아갈 곳은 중국집이고 덕배에게 주어지는 보상은 모욕과 욕설이다. 한국 자본주의의 발전사를 상징하는 빈부 격차와 갈등을 <바람불어 좋은 날>은 이성과 이론이 아니라 감성과 경험으로 납득시킨다. 

“<바람불어 좋은 날>이 보여주는 사회 고발의 힘은 세월이 흘러 많이 퇴색했다. 그것은 1970~80년대의 사회 현상일 뿐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그러나 이 영화가 계속 회자되고 고전의 반열에 오를 수 있는 것은 한 차원 높은 인간에 대한 이해를 보여줬기 때문일 것이다. 마르크스나 프로이트를 몰라도 <바람불어 좋은 날>을 보면 알 수 있는 인간의 모습이 거기에 있다.”(<한국영화 100선> 129쪽, 한국영상자료원 편)
 
바람불어 좋은 날 스틸
 
오래전 나는 이 영화에 대해 이렇게 쓴 적이 있다. 다시금 <바람불어 좋은 날>을 보고 나니 덧붙이고 싶은 말이 생겼다. 왜 지금은 <바람불어 좋은 날> 같은 영화가 안 나오나, 라는 궁금증이다. 상업영화 시스템이 이런 영화를 더 이상 만들 수 없게 만들었다고 한다면 독립영화에선 어떤가? 상당수 독립영화가 젊은 세대의 가난과 절망을 다루고 있다. 88만원 세대, 삼포 세대 등 그들을 지칭하는 표현은 바뀌었지만 그들의 절실함은 그대로일 것이다. 아마 오늘의 청년 세대는 중국집, 여관, 이발소 대신 편의점이나 고시원에서 70년대 젊은이들과 비슷한 궁핍과 허기를 견디고 있을지 모른다. 1980년 덕배는 그런 어려움을 견디기 위해 말을 더듬고 매를 맞아도 참는 법을 배웠다. 2018년의 젊은이는 어디서 어떻게 살고 있을까? 누군가 그걸 제대로 알려주는 영화를 만들면 좋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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