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의 영화: 최후의 증인 (이두용, 1980)

by.오승욱(영화감독) 2018-05-04
최후의 증인

얼어붙은 땅에 비가 내려 곤죽이 된 진흙탕을 밟고 걸어가는 사내가 있다. 사내가 지나간 자리에는 깊게 파인 발자국이 남고, 그가 신은 구두는 진흙탕이 집어삼킨다. 사내는 진흙탕에 빠진 구두를 양손에 들고 진흙 범벅이 된 양말 차림으로 비바람이 몰아치는 길을 걷는다. 살을 에는 비바람에 사내는 손에 쥔 구두를 들어 귀마개를 하는 아무짝에도 쓸모가 없는 짓을 하며 계속 걷는다. 그는 살인 사건의 용의자들을 추적하는 형사 오병호(하명중)다. 앞으로 그가 사건을 조사하며 듣는 말들은 귀를 막고 싶을 만큼 고통스러운 것이 될 것이다.  
오병호가 살인사건 용의자들의 자취를 찾아가면서 감추어졌던 진상이 드러나는데, 살해된 피해자들이 가해자들이었고, 살인 사건의 범죄 용의자들이 커다란 슬픔을 지닌 피해자들이란 것이다. 살해당한 자들이 저지른 끔찍한 죄악이 드러나고 한국전쟁이 끝난 지 20여 년이 지난 그때까지도 지리산 공비, 토벌대, 빨갱이, 학살이란 이름의 악령들이 독사처럼 똬리를 틀고 범인을 잡으려 하는 오병호 형사의 앞길을 막고 있다.  

하드보일드 영화가 이야기를 풀어 가는 태도대로 오병호 형사는 수사를 하면서 수많은 인물을 만나게 되는데 그들 대부분이 자신들이 저지른 죄가 드러날까 두려워 이방인을 경계의 눈초리로 꼬나보고 투박하고 무뚝뚝하게 처신하는 70년대의 대한민국 남성들이다. 
젓가락 장단과 작부의 처량한 노랫소리가 가득한 술집 골목을 들어서는 오병호. 그는 추위도 피하고 목도 축일 겸 초라한 술집에 들어가 막걸리 한주전자를 시켜 놓고 난롯가에 앉아 늙은 술집 여주인과 이야기를 나눈다. 늙은 술집 여주인의 푸념과 넋두리가 시작되고, 오병호가 지역 사정을 청취하려 질문을 던지는 순간, 좁은 술집의 골방 창호 문이 벌컥 열리면서 이불을 덮어쓰고 누워있던 중년의 사내가 입에 담배를 꼬나물고 서슬이 시퍼렇게 “쓸데없는 소리 말라”며 여주인의 말을 막는다. 늙은 여주인의 아들인 사내는 처음 본 낯선 남자에게 신세타령하며 자신이 사는 지역의 사정을 말하려는 어머니가 못마땅하여 입을 막아 버린 것이다. 아마도 그는 어머니가 술을 팔아 번 쥐꼬리만 한 푼돈을 빼앗아 밤이 되면 도박을 하거나 여자를 찾아가는 자일 것이다. 
매서운 겨울바람이 부는 해질녘, 마당에서 펌프질을 하며 저녁 찬거리를 씻는 늙은 여자에게 다가가 탐문을 하는 오병호. 늙은 여자가 꽁꽁 언 손을 비비며 형사의 물음에 답하려 하자, 사랑방 문이 벌컥 열리며 아랫목에 이불을 깔고 누워 있던 사내가 험상궂은 얼굴을 내밀며 이방인과 대화를 하려는 늙은 여자의 입을 막는다. 우리 마을의 사정을 타지에서 온 사람에게 함부로 이야기하지 말라는 것이다.  
눈이 무릎까지 쌓인 강원도의 깊은 산골 외딴집. 굽은 허리로 산에서 나무장작을 해 지게에 지고 지팡이에 의지해서 마당으로 들어선 할머니에게 오병호가 다가가 말을 걸자 이번에도 골방의 문이 벌컥 열리며 젊은 청년이 낯선 이방인과 이야기를 하려는 할머니의 입을 막는다. 청년은 무릎 아래가 잘려져 나간 한국전쟁의 상이군인이다. 
 

형사가 찾아가서 만난 남자들은 하나같이 이방인을 경계하고 자기 마을의 사정과 사건의 진상을 덮으려 하고, 늙은 어미와 늙은 아내를 겨울바람 속에서 일하게 하고 자신들은 손 하나 까딱 안 하고 따뜻한 아랫목에 이불을 덮고 누워 하루를 까먹으며 무위도식하는 자들이다. 형사가 만난 남자 중에서 일을 하는 자들은 비바람이 부는 외딴곳의 창고에 숨어서 온몸에 돼지 피를 묻히고 밀도살을 하거나, 거드름을 피우며 책임 전가를 하고 모르쇠로 일관하는 공무원들이다. 영화 속에서 제대로 된 일을 하고 순리대로 살아 보려고 한 남자들은 힘이 세고 교활한 남자들에 의해 죄를 뒤집어쓰고 교도소로 가거나 죽었다. 일제강점기와 한국전쟁을 거치면서 비루하고 포악하게 변해버린 한국 남성들의 폭력적인 어두운 모습이 이 영화에는 고스란히 담겨 있다. 한국 영화에서 한국 남성들의 비루한 모습이 이토록 예리하게 담긴 영화는 <최후의 증인> 이전에도 이후에도 없다.  
 

협잡과 권모술수, 배신으로 온몸을 무장하고 ‘살아남기 위해서 한 짓이고 남들도 다 그렇게 했다’는 더러운 변명을 방패로 해방과 전쟁의 와중에 남의 것을 강탈하여 치부한 양달수(이대근)가 그의 아내와 딸을 대하는 태도를 통해서 일제강점기와 한국전쟁에서 살아남고 성공한 한국남자들이란 어떤 존재인가가 예리하게 드러나는 장면이 양달수의 양조장 마당 신이다. 
양달수는 지리산 공비 토벌대장의 완장을 차고 온갖 더러운 짓을 벌이고, 양조장을 강탈하여 치부해 남부러울 것이 없는 몸이다. 최고급 한산모시로 만든 옷을 입고 입에 곰방대를 문 양달수가 양조장 마당에 서 있다. 토벌대장 시절의 초라했던 모습은 사라지고 이제는 지역 최고의 부자이자 유지가 되어 한눈에도 부자 티가 줄줄 흐른다. 학교 수업을 마친 양달수의 딸이 마당으로 들어선다. 하얀 여름 교복을 입은 그녀는 활기차고 싱그럽다. 부자 아버지와 남부러울 것이 없는 환경에서 자라난 예쁜 딸. 언뜻 보기에 아름다운 풍경이다. 아버지와 딸의 사랑이 듬뿍 담긴 인사가 오가고, 딸은 부엌에서 나오는 어머니에게 반갑게 달려가는데, 양달수와 마주친 어머니(정윤희)는 그와 마주치자 딸의 인사에 제대로 대구를 안 하고 마치 더러운 것을 피하듯 황급히 방안으로 도망친다. 그 모습은 겁에 질린 것 같기도 하고 혐오가 가득한 것 같기도 하다. 자신을 피해 사라져 버린 아내의 뒷모습을 보고, 양달수는 “또 그런다. 쌀쌀맞게”라며 무안함을 얼버무리려는 듯 말한다. 어머니 손지혜(정윤희)는 양달수를 비롯한 악당들에게 배신당하고 모든 것을 강탈당한 여자다. 그녀는 악당 양달수에게 결혼이란 이름으로 납치되어 눈과 입을 닫고 포로로 살아왔던 것이다. 
양달수는 그녀가 왜 자신을 벌레 보듯 피하는지 너무나 잘 알고 있다. 양달수는 자신과 그의 일당들이 그녀에게 저지른 사악한 죄를 성공을 위해 일하다 생긴 당연한 사건이었다고 깊숙하게 묻어 두고는, 그녀가 남편인 자신을 존경하지 않고 벌레 보듯 하는 것을 넓은 아량으로 용서할 수 있다는 듯 허세를 부리는 것이다. 여성에게 죄를 지은 남성이 그 죄를 애써 외면하는 장치로 허세를 사용하는 것이다. 
납치된 어머니와 악당 아버지 밑에서 사는 딸은 발랄함과 쾌활함으로 끔찍한 가족사를 치장하려 안간힘을 써보았지만 그녀의 노력은 역부족이었고, 결국은 자살로 생을 마감한다. 손지혜와 황바우(최불암) 사이에 난 아들 역시 부모들에게 죄를 저지른 악당들의 죄를 응징하려다 비참한 최후를 맞는다. 악업은 대를 물리며 자식들까지 파멸하게 만들고 만 것이다.  

<최후의 증인>은 추악한 죄를 애써 덮으려 했지만 덮어 놓은 흙 밖으로 비어져 나온 진상이 드러나면서 벌어지는 비극의 하드보일드이다. 라스트, 감당 못 할 진상의 무게에 못 견디고 총구를 입에 쑤셔 박는 주인공의 최후까지 이 영화는 한눈을 팔지 않고 죄의 근원을 따라 족적을 찍으며 간다. 1970년대 말, 살을 에는 강추위로 꽁꽁 얼어붙은 동토의 왕국에서 만들어진 영화 <최후의 증인>은 1980년에 집권한 신군부의 검열관들이 훼손하고 조롱하며 흙더미로 덮어버렸지만 추악한 흙더미를 뚫고 20여 년 만에 부활한다. 어쩌면 이렇게 영화의 내용과 영화의 운명이 일치하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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