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라이드 로버트 저메키스, 2016

by.남다은(영화평론가) 2018-01-25조회 8,023

영국 정보국의 장교 맥스 바탄(브래드 피트)은 상부로부터 아내 마리안 부세주르(마리옹 꼬띠아르)가 마리안으로 위장한 독일군 스파이로 의심된다는 말을 듣는다. 맥스와 마리안은 카사블랑카에서 독일 대사를 암살하는 작전에 함께 투입되었다가 사랑에 빠진 사이다. 아내가 스파이라는 걸 믿을 수 없는 맥스에게는 그 사실을 증명할 72시간 만이 남아 있는 상태다. 맥스는 마리안 덕에 목숨을 구했다고 말했던 영국군 가이 생스터(매튜 구드)를 기억해내고, 그가 머무르고 있는 요양원으로 찾아간다. 이제 <얼라이드>에서 잊히지 않는 끔찍한 장면 하나가 등장한다. 가이 생스터는 휠체어에 앉아 있다. 왼쪽 눈 주위에 상처가 난 그의 얼굴 한 측면만이 화면에 담긴다. 맥스는 아내의 사진을 그에게 건네며 그 여자가 마리안 부세주르가 맞는지 묻는다. 그때 가이 생스터가 고개를 돌려 얼굴 정면을 보인다. 오른쪽 눈이 아예 제거된 그의 얼굴 한 편은 완전히 일그러져 있다. 그는 눈 망막이 박리되어 사진의 형체를 알아볼 수 없다고 말한다. 

이 순간, 우리가 체감하는 충격은 단지 시각적으로 흉측하고 처참하게 무너진 그의 얼굴에 기인하는 것만은 아니다. 우리를 정면으로 응시하고 있는 이 얼굴에 그가 지나온 시간의 역사가 오롯이 잔혹하게 새겨져 있지만, 그 얼굴은 정작 아무것도 볼 수 없다는 사실이 섬뜩함을 안긴다. 온전히 드러난 가이 생스터의 훼손된 얼굴은 마치 <얼라이드>의 세계를 감싸던 환상의 막이 아무런 저항도 없이 벗겨져 버리고 만 순간처럼 느껴진다. 환상이 거둬진 후, 우리가 대면하는 건 마리안의 정체를 판별하는 눈이 아닌, 그저 무능력하고 무기력한 텅 빈 얼굴이다. 사실관계를 밝혀 서사를 추동하는 힘을 일순간 멈춰 세우는 압도적인 ‘무(無)’의 형상이 여기 불현듯 끼어드는 것이다. 

마리안의 실체를 밝히는 데 어떤 기능도 하지 못하지만, 바로 그러한 이유로 가이 생스터의 이 짧은 장면은 <얼라이드>라는 세계를 관통하는 하나의 질문을 떠오르게 한다. ‘아직’ 폭로되지 않은 앎의 주변을 맴돌며 이 영화의 환상은 무엇을 하고 있는가. 마리안 부세주르로 불리는 여자가 진짜인지 가짜인지에 대한 물음이 결국 <얼라이드>의 표면적인 축이라면, 그 과정에서 영화는 자신의 환상과 어떻게 마주하고 있는가, 라는 물음말이다. 

첩보물로 보건, 멜로로 보건 이 영화의 구조는 균형적이지 않다. 낯선 남녀가 만나 부부행세를 하며 사람들의 신임을 얻고, 마침내 함께 임무를 완수하기까지 영화가 할애하는 시간은 전체 분량 중 절반도 채 되지 않는다. 그들이 카사블랑카를 떠나 영국으로 건너와 포탄이 날아다니는 한복판에서 결혼을 하고 아기를 낳는 장면도 압축적인 편집으로 빠르게 지나간다. 대신, 영화의 나머지는 상부가 맥스에게 허용한 단 3일, 즉 아내의 정체를 알아낼 시간에 모조리 사용된다. 말하자면 영화의 절반은 서사가 포괄하는 사건의 비중과 범위에 비해 어딘지 서둘러 다급하게 다뤄지고, 이후는 반대로 그 세계를 의식적으로 느리게 연장하고 있다는 인상을 준다. 전자를 사건의 시간으로, 후자를 심리의 시간으로 간명히 설명할 수도 있겠지만, 이 불균형한 구조 혹은 서사의 속도에 대해서는 더 해야 할 질문이 있을 것 같다. 

맥스와 마리안은 첫 만남부터 부부의 모습을 연출하는 가운데, 독일 대사를 피살하는 공동의 목적을 추진하면서도, 매혹적인 낯선 남녀의 위치에서 서로를 탐색하는 것처럼 보인다. 그들이 펼쳐내는 능숙한 표면의 활동이 우아하게 막힘없이 지속되는 와중에도 그 흐름에서 빠져나와 표면의 활동을 물끄러미 호기심 어린 눈으로 지켜보는 그들의 시선이 동시에 작동하고 있다. 그들은 서로의 정면을 응시하거나 자신의 정면을 노출하며 무언가를 직접적으로 전달하고 표출하는 대신, 마주 보는 순간에도 시선을 살짝 어긋나게 두거나, 제3의 시선들을 경유해서 상대에게 도달한다. 그들은 주위의 모든 것들을 의심하면서도 정작 서로의 과거에 대해서는 어느 이상 묻지 않는다. 하지만 내내 불명확하고 모호한 눈빛으로 상대를 관찰하는데, 그 눈빛은 상대에게 닿기 전에 이미 카메라의 눈 안으로 흡수되어버린다. 

이렇게 말할 수 있을까. 이들은 정면이 아닌 측면의 방향으로 함께 존재한다. 그 방향성은 무언가와의 대면을 최대한 미룸으로써 어떤 상태를 잠재적인 가능성으로 남겨두려는 안간힘 같은 것이다. 이들이 나눈 감정이 어디까지가 진심이고 연기인지 묻는 일은 무용하다. 진심과 연기 사이를 오가는 활동이 빚어낸 어떤 상태만이 지금, 이들의 세계에서는 중요하다. 두 남녀가 독일군들을 죽인 후, 차를 타고 현장을 빠져나오면서 마치 모든 문제가 말끔히 해결된 것처럼 결혼을 언급하는 장면은 감정적으로나 서사적으로나 아무래도 성급해 보인다. 하지만 그 성급함은 어쩔 수 없는 것이다. 이들은 지금 자신들을 쫓아오는, 한번 마주하면 다시는 떨쳐낼 수 없을 그림자로부터 맹렬하게 달아나고 있는 중이기 때문이다. 

<얼라이드>의 마지막 72시간 안에 등장하는 비행기 추락장면의 강렬함과 기괴함은 그러한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 맥스의 집에서는 마리안의 주최로 파티가 벌어지는 중이다. 맥스는 마리안을 스파이로 확신하는 상부의 주장을 신뢰하지 않으면서도 불안한 시선으로 그녀의 행동을 쫓는다. 그러던 중, 공습경보 사이렌이 울리고 밤하늘은 한순간 폭격의 굉음과 빛으로 가득 차는데, 공격을 받고 하강하는 적기 하나가 맥스의 시야에 잡힌다. 그런데 갑자기 그 비행기가 그의 집 쪽으로 방향을 틀어 떨어지기 시작한다. 맥스가 마리안과 아기가 있는 2층으로 황급히 올라가자 창문으로 불에 탄 비행기가 돌진하고 있다. 맥스와 마리안은 불에 탄 채 자신들을 향해 다가오는 창밖 비행기의 이미지를 정면으로 무방비하게 쳐다볼 뿐이다. 

우리가 가이 생스터의 얼굴 정면을 보고 느꼈던 공포와 무력감과 불길함이 이들의 표정에서도 스쳐 간다. 이 찰나는 카사블랑카에 두고 온, 아니, 그곳을 떠난 후 이들이 내내 회피하던 그림자가 위압적이고 파괴적인 형상으로 돌아와 이들의 현재를 기어이 삼키기 직전의 순간처럼 경험된다. 다행히 비행기는 창문을 뚫고 들어와 이들을 덮치지 않고 집 뒤편의 언덕에 추락한다. 그리고 다음 날 이들 가족은 다시 평화를 되찾은 언덕으로 소풍을 나온다. 그들 뒤로 부서진 비행기가 보인다. 이 장면은 마치 의미를 규명할 수는 없으나 그 막강한 힘만은 조금도 사그라지지 않은 실재의 무시무시함과 마주한 뒤, 더 이상 예전으로 되돌아갈 수 없는, 이미 불구가 된 환상을 목격하는 것 같은 기분을 안긴다. 혹은 그것은 죽음을 바로 등 뒤에 두고 마지막으로 기어이 애를 써보는 환상처럼 보인다. 

그렇다면 이 영화는 결국 환상을 허락하지 않는 멜로의 비극일 뿐이라고 말해야 할까. 마리안 부세주르가 실은 ‘마리안 부세주르’가 아니었다는 사실을 알아가는 뼈아픈 과정에 그 비극이 있다고 말해야 할까. <얼라이드>가 혼신의 힘으로 영화의 절반을 할애한 72시간은 단지 그 사실을 일깨우기 위한 것일까. 맥스가 마리안의 정체를 증명하기 위해 홀로 고투하는 3일이 펼쳐지는 동안, 영화가 어느 순간부터 바라보는 곳은 사실관계가 밝혀지는 목적지가 아니다. 영화는 그 목적지로 향하는 과정에서, 그 목적지에 닿지 않기 위해 온 힘을 다하는 마리안과 맥스의 표정, 몸짓, 시선, 동선을 주시한다. 

그들은 무언가 달라지고 말았다는 사실을 직감한 상태지만, 마치 아무 일도 없다는 듯이 행동하고 종종 서로를 몰래 응시하며 일상을 이어간다. 그들은 카사블랑카에서 처음 만났을 때와 마찬가지로 최선을 다해서 연기한다. 아니, 그들은 어쩌면 지금까지 내내 서로에게 연기한 것이라고 말할 수도 있겠다. 하지만 이 후반부에 도달해서야 우리가 절실하게 깨닫는 건, 이 연기를 누구도 거짓이라고 부를 수 없다는 점이다. 적어도 이 세계에서 진짜와 가짜, 본질과 연기는 따로 존재하지 않는다. 눈에 보이고 만질 수 있는 바로 그 육체의 속삭임과 숨소리와 미소가 전부가 아니라면 여기, 다른 무엇이 있겠냐는 듯 이 세계는 우리를 빤히 쳐다본다. 

카사블랑카의 사막 위에서 이들이 벌이던 섹스 장면을 떠올려보라. 위협적인 모래바람으로부터 차단된 좁은 차 안에서 그 모래바람에 둘러싸여 그들은 사랑을 나눈다. 그들은 몇 시간 후 임무에 실패하면 누구에게도 기억되지 못한 채 죽을 운명이며, 당장 일보만 걸어 나가도 모래바람에 휩쓸릴 것이다. 하지만 그들은 이 한계로 뒤덮인 상황과 운명에 들러붙은 어둠에 잠식되지 않는 자신들만의 세계를 확보하는 중이다. 작지만 촘촘하고 위태롭지만 관능적인 딱 그 정도의 시공간이 그들이 지켜내려는 어떤 상태고 환상이고 우주다. 

그러니 <얼라이드>는 과연 우리는 환상과 싸워 우리의 진실을 어디까지 알고 대면할 수 있는가, 가 아니라, 우리는 우리의 환상을 얼마나 끝까지 필사적으로 책임지고 지키며 사랑할 수 있는가를 묻는 영화다. 이 두 질문 사이의 커다란 차이를 이 영화는 알고 있다. 강하고 아름답고 정직하게 그 환상의 힘을 바라본다. 가이 생스터의 얼굴 정면에서 우리가 대면하고 만 무(無)가 아니라, 두 남녀의 시선이 측면의 방향에서 포기하지 않은 힘겨운 활동의 가능성을 이 영화는 믿고자 한다. 설령 그 끝에서 죽음이라는 필연을 맞이할 수밖에 없을지라도 이 영화는 배신과 거짓이라는 단어를 쓰지 않고 그 환상을 온전히 안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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