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리아의 비가(悲歌): 들리지 않는 노래 이브게니 아피네예브스키, 2017

by.김경태(영화평론가) 2018-02-06
시리아의 비가 스틸 이미지
중동과 북아프리카 지역을 휩쓴 일련의 반정부 시위들은 마침내 독재 정치를 몰아내며 성공적인 혁명으로 자리매김했다. 2011년, 이웃 나라들이 쟁취한 ‘아랍의 봄’을 지켜본 시리아의 10대 소년들은 알 아사드 대통령을 겨냥한 낙서를 학교 벽에 남겼다. 당국에 체포된 이들은 가혹한 고문으로 신체가 심하게 훼손된 채 사망한다. 이 사건은 시리아 민중들의 반정부 시위의 단초가 되며, 나아가 반군과 정부군, 그리고 IS 간의 잔인한 살육 전쟁인 시리아 내전으로 비화되었다. 이로 인한 사망자 수는 현재까지 25만 명을 넘어섰다. 이브게니 아피네예브스키 감독은 다큐멘터리 <시리아의 비가>(2017)를 통해 시리안 반군과 난민의 시점에서 연대기 순으로 이 사건을 숨 가쁘게 따라가며 묵묵히 정공법으로 담아낸다.

영화는 시리아를 무사히 탈출해 살아남은 활동가들과 반군 소속 군인들, 아이들 등의 인터뷰를 통해 정부와 IS가 자행한 비인간적이고 잔인한 행위들을 재구성한다. 그리고 그 인터뷰이의 목소리는 어느새 관련 사건들을 촬영한 투박하고 거친, 그만큼 더 끔찍한 영상들 위로 흘러나온다. 감독이 밝히고 있듯이, 영화 속에 쓰인 모든 영상들은 시리아 활동가와 시민들이 카메라와 스마트폰 등을 이용해 직접 찍은 것들이다. 시리아 내전의 일거수일투족은 그들에 의해 빠짐없이 기록되어 있었다. 그 영상들은 관련자들의 증언을 꼼꼼히 뒷받침하며 고통스러운 울림을 배가시킨다. 한편, 감독은 서구 열강들이 얽혀있는 내전의 복잡한 정치적 내막이나 이해관계, 그 합리적 해법에 대한 접근은 하지 않는다. 다만 묵직하게 쉼 없이 그 잔혹성을 까발릴 뿐이다. 더 심도 깊은 논쟁에 뛰어들 필요도 없이, 평범한 인간들을 저 생지옥으로 몰아넣은 것만으로도 비난받아 마땅하다고 말한다. 따라서 엄밀히 말해, 영화 속 대립 구도는 ‘반군’ 대 ‘정부군/IS’라기보다는 ‘인간의 고통’ 대 ‘그 고통에 대한 무감각’이다.

눈 앞에 펼쳐지는 고문과 전쟁, 살인의 잔혹한 날 것 그대로의 이미지들을 직시하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우리가 TV 뉴스와 신문 지상에서 짤막한 외신들로 접했던 그 사건들이 생생한 이미지로 되살아 날 때, 그 동일한 사건들은 전혀 다른 온도로 다가온다. 무엇보다 그것은 격렬한 몸의 반응을 이끌어 낸다. 당신은 특정 장면에서 고개를 돌리거나 눈을 지그시 감게 될 수도 있다. 그러다 나중에는 너무 충격을 받은 나머지 몸이 경직되어 꼼짝 못 하고 그 광경들을 낱낱이 보게 될지도 모른다. 그리고 영화가 끝난 후, 당신은 한동안 전율에 휩싸이거나 미열에 시달릴 수도 있다. 일단은, 이 영화를 마지막까지 참고 본 자신을 대견해 하자.  

이처럼 영화는 포탄이 쏟아지는 시리아 한가운데로 우리를 인도한다. 그것은 ‘유니세프 난민 기구’가 동정심을 유발하기 위해 슬픈 눈망울의 시리아 아이들을 모델로 쓰며 후원금을 요구하는 방식과 다른 층위에 놓인다. 영화는 말한다. 이것은 단순히 우리의 관대한 자비심으로 해결할 수 있는 차원의 문제가 아니라고. 그래서 그토록 견디기 힘든 죽음을 둘러싼 외설적인 이미지들을 나열하며 우리를 그 내전의 참상 속으로 최대한 몰고 간다. 그 고문의 공포를, 포탄의 공포를, 죽음의 공포를, 그리하여 타인의 고통을 생생히 느껴보라고 말한다. 그 이후, 이제 그것은 더 이상 머나먼 나라의 일이 아니다.

이와 같은 전쟁의 실재는 우리를 불편한 윤리적 고민으로 이끈다. 그것은 참혹하지만 미학적으로 다듬어진 전쟁 영화와는 다르다. 카메라의 정교한 조작과 사실적인 특수효과로 빚어진 전쟁의 이미지는 우리로 하여금 그 미학 속으로 도피할 수 있도록 해준다. 그러나 날 것 그대로의 전쟁 이미지에는 차마 숨을 곳이 없다. 영화의 마지막, 난민이 된 아이들은 밝은 표정으로 관객을 향해 당당히 희망의 메시지를 전한다. 영화를 끝까지 버티고 봤다면, 당신에게 그들은 더 이상 한낱 동정의 도상으로 존재할 수 없게 될지 모른다. 삶과 죽음의 경계를 무수히 넘나들었던 그들을 감히 어떻게 우리 따위가 동정하겠는가. 우리가 느꼈던 그 전율과 미열을 기억하자. 그것은 동정을 넘어 연대를 위한 시발점이 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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