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하나님 배창호, 1987

by.전종혁(영화칼럼니스트) 2018-02-12
안녕하세요 하나님 스틸이미지
“사랑에 빠진 주인공이 왜 여인을 등에 업는 걸까요?”

<길>(2006)이 개봉할 무렵, 배창호 감독님과 인터뷰를 한 적이 있다. <흑수선>(2001)의 흥행 참패 이후 인디펜던트 감독의 길을 걸었던 그는 토속적인 색채가 짙은 <길>을 내놓았다. 어린 시절, 페데리코 펠리니 감독의 <길>(1954)에 깊은 감명을 받았던 그가 <길>이라는 제목의 영화를 만든 것은 어찌 보면 숙명적인 일이었다. 더욱이 1980년대 한국의 로드 무비를 대표하는 <고래사냥>(1984)을 선보이며 흥행 감독이 된 장본인이 아닌가. 영화감독으로서 점점 내리막길을 걸었던 2000년대, 한국적인 정서로 회귀한 <정>(2000)과 <길>에는 주인공이 사랑하는 여인을 등에 업는 장면이 나온다. 마치 <춘향가>의 ‘사랑가’처럼 “이리 오너라, 업고 놀자”를 연상시키는 장면이 존재했다. 사랑이 등에서 ‘두둥실’ 떠다니는 순간으로 묘사하고 싶은 장면에 대해, 다짜고짜 질문을 던졌다. “하하하!” 배 감독님은 곧 함박웃음으로 화답했다. “나도 몰랐는데, 얘기 듣고 보니 정말 그렇네”라며 크게 의식하지 못한 장면이었다고 고백했다. 인터뷰를 하다 보니, 배 감독님이 <정>과 <길>의 주인공들과 다르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쨌든 감독님과의 인터뷰가 끝난 이후에도, 계속 머릿속에서 맴돌았던 영화가 있었다. 바로 <안녕하세요 하나님>(1987)이다. 정작 <안녕하세요 하나님>에 대해 질문을 하진 못했지만, 인터뷰 이후에는 이 작품이 ‘가장 배창호다운’ 영화로 다가왔던 것 같다. 물론 배창호 감독의 눈부신 데뷔작 <꼬방동네 사람들>(1982)이나 <고래사냥>(1984), 순수 멜로 <기쁜 우리 젊은 날>(1987)에 비해 이 영화가 뛰어난 작품성을 지녔다고 주장할 생각은 없다. 그저 <정>과 <길>에 앞서, 그 영화들이 지닌 정서가 <안녕하세요 하나님>에 이미 녹아있다고 언급하는 정도로 충분하다. 당시에는 배 감독의 페르소나 배우 안성기가 뇌성마비 청년 병태를 연기했던 것이 화제를 모았다. 이 ‘착한’ 영화를 좋아하는 소수의 관객은 한참 뒤에 등장한 <포레스트 검프>(1994)와 비교하기도 하지만, 그것은 그저 단순 비교에 불과하다.

1970, 80년대 한국영화의 계보를 떠올리며 <안녕하세요 하나님>을 냉정하게 바라보면, 병태가 ‘경주 가는 길’에서 만나는 시인 민우(전무송)와 만삭의 춘자(김보연)는 이미 이만희 감독이 <삼포가는 길>(1975)에서 선보였던 만남과 인연(세 사람의 관계)과 크게 다를 리 없다. 심지어 배 감독의 전작 <고래사냥>(1984)의 자기 복제일 수 있다(차라리 의도적인 선언에 가깝다. <고래사냥>의 주인공들이 병태, 민우, 춘자인 것을 떠올리는 것은 어렵지 않다). 오히려 스스로 창조해 낸 ‘떠돌이 혹은 방랑자’의 로드 무비의 원형을 고수하면서 변주하는 실험에 가깝다. 서울역이 아니라 우이동에서 경주 가는 차를 찾는 병태는 어린 시절의 꿈(좌절된 소망)을 이루기를 원한다. 그에게 잃어버린(허락되지 않은) 수학여행과 경주는 이상향이 될 수밖에 없다. 다행히 병태는 소주를 얻어먹고 그의 여행을 돕고자 하는 민우, 우연히 기차에서 만난 춘자와 함께 동행한다. 이 여행은 누구나 쉽게 예상 가능하다. 이들은 여행 비용이 바닥나자 잔칫집에서 포식을 하거나 시골길에서 차를 얻어 타거나 전당포를 찾는 식의 소소한 에피소드들이 펼쳐진다. 비가 억수로 쏟아지는 날, 임신 중이던 춘자가 어느 시골집 외양간에서 아기를 낳는 것이 그나마 큰 사건이다. 

이 영화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역시 엔딩이다. 즉 관객이 병태의 여행 과정을 쫓다 보면 자연스럽게 “이들은 과연 경주에 도착할 수 있을까?”라는 질문을 던지게 된다. 하지만 여기서 반전에 가까운 상황이 펼쳐진다. 춘자의 아이가 탄생한 후, 점프 컷으로 유치원 아이들과 함께 버스를 탄 병태와 춘자, 그녀의 아이가 경주에 도착하는 장면이 나온다. 그리고 뜻밖에도 이들은 고급 레스토랑에서 무전취식을 하며 병태와 춘자를 경주로 떠나 보냈던 민우와 다시 만난다. 하지만 이 장면은 결코 배창호 감독 영화에서 주축을 이루는 리얼리즘의 세계가 아니다. 판타지에 가까운 영화적 상상력이 동원된다. 헤어진 민우와의 재회는 현실에서 불가능하다. 심지어 민우의 머리나 옷차림을 보면 그가 음악 선생님 시절의 모습이라고 추정할 수 있다. 그렇다면 이 장면은 병태의 판타지이자 병태를 위한 위로로 볼 수 있다. 병태는 경주에 가고 싶은 마음에 홀로 수학여행을 떠나지만, 그가 여행에서 발견한 것은 첨성대의 별이 아니라 그와 동행해 준 사람들이다. 한마디로 배창호의 로드 무비는 동행이다. 외롭고 험난한 길(인생)을 홀로 걷지 않는 배려가 그의 영화에서 중요하다(<길> 이후 <안녕하세요 하나님>을 다시 보면 ‘길과 사람’의 관계에 숙고하게 된다). 

그리고 또 한번의 점프 컷! 여행을 마치고 무사히 집으로 돌아온 병태가 침대에 누워 잠이 들면서 영화는 끝난다. 그가 과연 경주를 다녀왔는지, 얼마나 시간이 흘렀는지는 중요하지 않다. 이미 청년이 된 병태를 등에 업을 순 없지만, 그와 마음을 나누고 교감할 수는 있다. 나침을 잃은 시대착오적 감성이라고 핀잔을 들어도 좋다. 이제 우리는 이런 영화를 극장에서 만날 수 없는 시대에 살고 있다. 그래서 80년대 로드 무비를 애타게 그리워한다. 여전히 소중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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