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수
Kim Yeong-su / 金永壽 / 1911  ~  1977
대표분야
시나리오
활동년대
1940, 1950, 1960, 1970
DB 수정요청

필모그래피 (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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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작 :
첫정 (장영국, 1971)
거북이 (이성구, 1970)
세상만사 뜻대로 (정인엽, 1970)
소복 (전조명, 1967)
엘리지의 여왕 (한형모, 1967)
나는 매국노 (임원식, 1966)
친정어머니 (김기덕, 1966)
막내딸 (김수용, 1965)
큰 사위 작은 사위 (이봉래, 1965)
바람아 말하라 (이형표, 1965)

주요경력

1933년 도쿄 와세대대학 재학 중 이해랑(李海浪), 김동원(金東園) 등과 도쿄학생예술조 조직
조선일보 학예부 기자
고려영화주식회사 입사, 이후 선전부장 역임
1934년 조선일보 신춘문예에 희곡 <광풍>, 동아일보 신춘문예에 희곡 <동맥>이 당선되어 극작가 데뷔
1939년 조선일보 신춘문예에 소설 <소복>이 당선되어 소설가로도 활동
1945년 광복 후 고려문화사 편집국장
1947년 10월 극단 '신청년' 조직, 전속작가로 활동
1952년 한국전 도중 오키나와의 UN방송국에서 근무
1960년 귀국 후 방송극작가로 활동

기타정보

주요기타작품
1934년 조선일보 신춘문예 당선 (희곡「광풍」)
1934년 동아일보 신춘문예 당선 (희곡 「동맥」)
1939년 조선일보 신춘문예 당선 (소설 「소복」)
수상내역(기타)
■ 수상내역(연극)
1947년 제1회 전국연극경연대회 1등상 (혈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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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영화인][구술로 만나는 영화인] 김영수 -각본 필명으로남해림이라는 이름을 쓰기도 한다. 서울에서 출생했다. 배재고보를 다니다가 학비가 없어 중퇴하고 중동학교에서 수학했는데, 중동학교 2학년 학생이던 1929년에 잡지 「동광」의 현상 시 모집에 당선되기도 했다. 1933년부터 일본 와세대대학 제2고등학원을... by.이영미(대중예술평론가) 2012-02-28

영화인 정보조사

출처 : 한국영화인 정보조사
1911년 서울에서 출생했다. 일본 와세다대학 영문과에서 공부했으며, 그곳에서 만난 이해랑, 김동원과 동경학생예술좌(東京學生藝術座)를 창립해서 활동했다(이주의영화인). 1934년 조선일보 신춘문예에 희곡 「광풍」, 동아일보 신춘문예에 희곡 「동맥」이 당선되어 극작가로 데뷔했으며, 1939년 조선일보 신춘문예에 소설 「소복」이 당선되어 소설가로도 활동했다. 그는 고려영화협회(高麗映畵協會)가 제작한 전창근 작 <복지만리>(1941)의 시나리오 작업에 참여했으며, 백년설이 불러 해방 후까지 오래 인기를 모은 주제가 “복지만리”(이재호 작곡)의 가사를 쓰기도 했다(이주의영화인). 이후 한형모 감독의 <성벽을 뚫고>(1949), 홍성기의 <출격명령>(1954), 권영순의 <장미의 곡>(1960) 등 작품의 시나리오를 썼다. 1952년 한국전 도중 오키나와의 UN방송국에서 근무하기도 했으며, 이후에는 방송극작가로 활발하게 활동했다. 1977년 숙환으로 별세했다(동아일보).

* 참고문헌
경향신문 1977년 4월 25일자 7면
동아일보 1977년 4월 25일자 7면
한국영화데이터베이스 이 주의 영화인(이영미) http://www.kmdb.or.kr

[작성: 김한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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