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철
Hwang Cheol / 黃澈 / 1912  ~  1961
대표분야
배우
활동년대
1930, 19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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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우 :
젊은 모습(원제:若き姿) (도요다 시로, 1943) 마쓰다 마사오(담임선생)
사랑에 속고 돈에 울고 (이명우, 1939)

주요경력

1930년 지방유랑극단 벽우회에서 잡역부
1932년 10월 구속된 배우 이경환의 대역으로 <청춘난영> 무대에 섬
1935년 동양극장 전속극단 '청춘좌' 창단 단원
1939년 동양극장에서 나와 극단 '아랑' 창설 후 대표 역임
1945년 9월 극작가 함세덕, 배우 서일성 등과 함께 낙랑극회 조직
1946년 12월 연극동맹 서울지부 부위원장
1948년 4월 남북연석회의 참석
1948년 8월 월북
1951년 4월 국기훈장 2급 수여받음
1952년 12월 22일 북한에서 첫 공훈배우 칭호 수여받음
1955년 국립연극극장 총장
1957년 8월 최고인민회의 대의원
1958년 교육문화성 부상
1959년 <무대화술>, <분장론> 저술
1961년 6월 9일 병사
1963년 9월 15일 <화술과 분장> 출판
1996년 6월 26일 조국통일상 수상

기타정보

저술내역
1959년 <무대화술>, <분장론>
1963년 9월 15일 <화술과 분장> 출판

영화인 정보조사

출처 : 한국영화인 정보조사
1912년 충남 청양에서 출생해 춘천고보에서 수학했다. 1931년 조선연극사에 들어가 연기수업을 받았고, 1932년 <청춘난영>의 대역으로 발탁되어 무대에 데뷔했다. 그의 대표작은 단연 <사랑에 속고 돈에 울고>(1936, 임선규)이다. 그는 ‘홍도’의 오빠 ‘철수’ 역으로 당대 인기스타로 부상했다. 이 작품을 이명우 감독이 1939년 영화화했고, 여기에 출연하며 스크린에 데뷔했다. 그 후 사단법인 조선영화주식회사에서 제작한 <젊은 모습(若き姿)>(1943) 등 국책영화에 출연하기도 했다. 1948년 월북해 1955년 북한의 첫 인민배우가 되는 등 북한에서 존경받는 배우로 맹활약하며, 최고인민회의 대의원 등 주요요직을 도맡았다. 1961년 지병으로 사망했다(식민지시대대중예술인사전).

* 참고문헌
강옥희 외, 『식민지시대 대중예술인 사전』, 소도, 2006.

[작성: 김한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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