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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경희
No Gyeong-hui / 盧耕姬 / 1929 ~ 1995
본명
노숙진 (No Suk-jin)
대표분야
배우
활동년대
1950, 1960, 1970, 198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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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빨간 여배우
(신승수, 1989)
비운의 열두고개
(홍성기, 1970)
어느 하늘아래서
(최무룡, 1968)
이마담(상칠의 누나, 에덴다방)
산호의 문
(엄심호, 1965)
구점옥
욕망의 결산
(임권택, 1964)
홍도야 우지마라
(전택이, 1964)
단향
갈매기 우는 항구
(조정호, 1964)
나나
연락선은 떠난다
(김진섭,김화랑, 1964)
홍마담
십자매 선생
(임권택, 1964)
서울에서 제일 쓸쓸한 사나이
(박종호, 1963)
추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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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26회 대종상 영화제(1987)
:
공로상(
)
주요경력
한국영화인협회 연기분과위 부위원장
기타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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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은미(영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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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행일
2006-08-01
[영화잡지] 씨네팬 1961년 5월호
발행일
1961-04-01
영화인 정보조사
출처 : 한국영화인 정보조사
1929년 강원도 화천에서 출생하여 배화고등여학교(排貨高女)를 졸업했다. 배화고녀를 졸업하던 1942년 그는 최인규감독과 배우 전택이가 공동 제작하는 <마의 산>에 출연할 여주인공 모집에 당선되었지만, 이 작품의 제작이 중단되자 약초가극단(若草歌劇團)에서 노래하는 배우로 연기생활을 시작했다(여성영화인사전). 1950년 <놀부와 흥부>(이경선)에 출연하며 영화배우로 데뷔했다(동아일보b). 1955년 김성민 감독의 <막난이비사>에서 막난이 ‘먹(전택이 분)’을 사랑하는 ‘달’로 분해 열연을 펼쳤다. 이 영화로 그녀는 1956년 금룡상 여우주연상을 수상하며 연기력을 인정받았다(동아일보a). 여기서 노경희의 연기력은 “최고의 수준에 달한 것으로 절대의 찬사를 보내어 아낌없는 것”이라는 평가를 받을 정도였다(경향신문a). 1955년 이강천 감독의 <피아골>은 노경희가 빨치산 여성대원으로 분해 적극적인 캐릭터를 선보이면서 개성적 연기를 부각시킨 작품이었다. 훗날 그녀도 회고에서 “피아골에서 열연했던 기억이 생생합니다”라 밝히기도 했다(경향신문b). 그녀는 자신의 욕망에 솔직하고 저돌적인 역할을 주로 맡아 당대 관객들에게 강한 인상을 남겼다. 이규환 작 <춘향전>(1955)의 당돌하고 입심 좋은 ‘향단,’ 교수 부인 ‘오선영’을 무도회장으로 이끄는 <자유부인>(1956)의 친구, 유부남 소설가에게 열렬하게 구애하는 <실락원의 별>(1957)의 ‘여대생’ 역할 등을 맡아, 1950년대 중후반 ‘연애무드’로 충만한 자유로운 풍속과 사회로 나온 당찬 여성상을 대변하는 연기를 선보였다. 1969년 <어느 하늘 아래서>를 마지막으로 20년간 휴식기를 보내다 1989년 <빨간 여배우>(신승수)로 스크린에 복귀하기도 한 그녀는, 1995년 67세를 일기로 생을 거뒀다(동아일보b).
* 참고문헌
경향신문a 1955년 11월 27일자 4면
경향신문b 1986년 5월 14일자 7면
동아일보a 1956년 1월 3일자 4면
동아일보b 1995년 7월 19일자 29면
주진숙 외, 『여성영화인 사전』, 소도, 2001.
[작성: 김한상]
출처 : 여성영화인사전
노경희 盧耕姬
-배우. 1929년 12월 25일 강원도 화천 출생. 본명 노숙진(盧淑鎭). 배화고녀 졸업.
김성민 감독의 <망나니 비사>(55)에서 ‘달’을 연기하여 제1회 금룡상에서 여우주연상을 수상한 노경희는 독특한 성격배우로 잘 알려져 있다. 고전적인 범주로 요약하자면 진선미 가운데 진 그리고 지정의 가운데 의를 분명하게 보여줬던 그의 연기는 아마도 한국 최초의 성격배우로서의 연기의 새로운 국면을 보여주는 것이었다.
배화고녀 시절 하루도 빠짐없이 극장에 다녔던 노경희는 친구들 사이에서 ‘극장대장’으로 통했다. 배화고녀를 졸업하던 42년 그는 최인규감독과 배우 전택이가 공동제작하는 <마의 산>에 출연할 여주인공 모집에 당선된다. 그러나 이 영화는 곧 제작이 중단되어 우선 ‘약초가극단’에서 노래하는 배우로 연기생활을 시작했다. 이 무렵 알게 된 배우 전택이와 한때 부부 스타로도 유명했는데 당시 유부남이던 전택이의 정부로서 8년이라는 긴 세월을 보낸 후 정부인이 되기까지 노경희의 드라마틱한 스토리는 영화잡지에 빈번히 거론되어 독자들의 관음증을 충족시켰다.
그러나 스크린 위에서 노경희는 대개 다른 곳으로 마음이 떠나버린 남자를 지배하려는 욕망에 사로잡혀 있었다. 남자에게 미끼를 던져 덫에 가둔 후 단단히 옭아매고선 위협적으로 몰아붙이는 그는 다름 아닌 ‘거미여인’이었다. 신념 또한 강했는데 때로는 하드보일드한 비정함으로 사건의 주도권을 장악하려는 애쓰는 ‘의지의 여인’으로 기억 되었다.
빨치산의 생태를 사실적으로 묘사함으로써 용공시비 끝에 몇 군데를 삭제하고서야 겨우 상영할 수 있었던 <피아골>(55, 이강천)에서는, 공산주의 이념을 회의하는 인텔리겐차 대원 철수(김진규)를 사랑하는 철저한 공산주의자인 빨치산대원 애란 역을 연기했다. 노경희는 세련된 연기로 여성 공산주의자의 열정적인 모습을 표현함으로써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최고의 인기를 누리게 되었다, 반공주의를 맹신하던 당시 시대 분위기를 고려한다면 그 인기가 얼마나 찬란했던 것인지 어렵지 않게 짐작할 수 있다.
<망나니 비사>(55, 김성민)에서는 사랑하던 망나니 ‘먹’ (전택이) 양반의 딸 ‘채’ (이경희)를 짝사랑하게 되자 그의 마음을 되돌리기 위해 갖은 술을 쓰는 술집 작부 ‘달’로 분했다. 얼굴 가득 불만스러움을 내비치며 그 특유의 빈정거리는 말투로 ‘먹’을 다루는 노경희는 단호한 계급의식을 보여주는 능동적인 하층민 여자였다. 그리고 능란한 사교술과 명철한 두뇌로 지적인 매력을 발하는 고영림 역을 맡은 <실낙원의 별>(57, 홍성기)과 영악하고 심술궂게 사랑을 추구하지만 아무것도 얻지 못하는 여자 최욱진 역으로, 당대 톱스타엿던 최은희, 이경희와 함께 공동주연한 <삼여성>(59, 박성복)도 노경희의 또 다른 대표작들이다. 그밖에 <느티나무있는 언덕>(59, 최훈)에서는 의지력 강한 여선생으로 분했으며 조미령이 춘향이로 나온 <춘향전>(55, 이규환)에서는 향단이로 출연했다.
박정권이 들어서면서 한국영화가 기업의 수출상품 내지는 외화 쿼터를 따는 수단으로 전락하기 전, 50년대 후반 수많은 중소영화사들이 난립했던 시기에 맡았던 이 배역들은 노경희의 경력에서 가장 훌륭한 것들이었다. 그러나 틀에 박힌 멜로드라마가 그 시대를 풍미하게 되면서 연기의 내적이고 예술적인 면보다 우선 스타의 외적 아름다움이 흥행의 중요한 요소로 자리잡게 되자 ‘노경희 선풍’까지 일으켰던 그 찬란한 인기는 점차 퇴락하기 시작했다.
어쩌면 한국영화에 동시녹음의 시대가 조금만 빨리 도래했더라면 그리고 영화의 다양성이 존중되는 풍토가 조성될 수만 있었다면 그의 영화경력은 훨씬 길어지지 않았을까.
신념이 강한 거미여인의 강렬한 인상만을 남긴 채, 노경희는 60년대 중반 더 이상 비만한 여배우를 찾지 않는 육체의 시대 그리고 안전한 장르 영화와 스타 중심의 기획영화가 전부인 산업의 시대가 되자 조용히 사라져야 했다.(여선정)
출연
-48 초우 -51 내가 넘은 삼팔선 -54 출격명령 -55 피아골, 춘향전, 망나니 비사 -56 인생역마차, 자유부인, 애인, 여성의 적 -57 실낙원의 별, 애원의 고백 -58 돈, 산 넘어 바다 건너, 실낙원의 별2, 애정무정, 느티나무 있는 언덕, 유혹의 강 -59 고바우, 내일 없는 그날, 백만장자가 되면, 별하나나하나, 사모님, 삼여성, 세 번째 남편(살아야 한다), 애련의 꽃송이, 젊은 아내, 정, 제이의 애정, 푸른 날개, 황금의상처, 황혼의 애상 -60 버림받은 천사, 어느 하늘 아래서, 울지 않으련다, 청춘화원, 추억은 영원히 -61 애정행로 -62 양귀비, 어딘지 가고 싶어, 흑태양 -63 거지왕자, 검은 꽃잎이 질때, 약혼녀, 연애주식회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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