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종철
Lee Jong-cheol / 李鍾哲 / 1909  ~  1972
대표분야
배우, 제작/기획
활동년대
1930, 1940, 1950, 196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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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우 :
지상 최고의 여정(세계로 뻗는 한국) (배석인, 1968) 인력거꾼
삼등여관 (김화랑, 1967) 동창
빛과 그림자 (최경옥, 1967) 관리인
사격장의 아이들 (김수용, 1967) 엿장수
남성 금지구역 (김달웅, 1966) 세탁소점원
백설공주 (민제, 1964) 두꺼비
님은 가시고 노래만 남어 (양명식, 1964) 가수지원자
여자의 일생 (신경균, 1962)
호랑이 꼬리를 밟은 사나이 (이강원, 1962)
구봉서의 벼락부자 (김수용, 1961) 정객

영화인 정보조사

출처 : 한국영화인 정보조사
이종철은 취성좌에서 활동을 시작한 연극배우 출신이었다. 특히 그는 희극배우였다. 1929년 취성좌가 해산하자 조선연극사에 활동하였다(동아일보a). 1930년대 연극호라는 연극단체에서는 철봉, 역기, 덤블링 등 체조연기를 보여주는 막간 연기로 인기를 끌었다(김종원). 이종철은 1935년 조선 첫 발성영화 <춘향전>을 통해 영화계에 데뷔했다. 이 영화에서 방자 역을 맡아서, 향단 역의 노재신, 사또 역의 임운학, 그리고 춘향 역의 문예봉과 함께 출연하였다(조선일보a; 조선일보b). 1936년에는 <장화홍련전>과 <홍길동전 속편>에 연속해서 출연하였다. <장화홍련전>에서는 장쇠를 연기하였다(동아일보b; 조선일보c). 영화 출연이 부진했던 1940년대에는 조선악극단 등에서 활동하며 ‘조선의 리처드 달마치’라는 평가를 받았다(김종원).
해방 이후에는 1956년 정비석 원작의 <나비야 청산가자>를 이청기가 각색한 <여성의 적>에 출연하였으며, 1958년에는 당대의 코미디언들이 대거 출연한 권영순 감독의 <오부자>를 비롯, 김화랑 감독의 <사람 팔자 알 수 없다>, 박시춘 감독의 <딸 칠형제>에 출연하는 등 활발한 활동을 펼쳤다(동아일보c; 경향신문a; 김종원).
희극배우로서의 뚜렷한 명성을 가지고 있던 이종철은 1966년 데뷔 40주년을 맞이하여 ‘비극의 여왕’ 전옥과 함께 연기생활 40주년 기념예능제를 성대하게 개최하기도 하였다(경향신문b). 1972년 5월 31일 갑작스런 고혈압으로 사망하였다(동아일보d). 슬하에 1957년 한국 최초의 TV방송국 HLK2 아나운서를 지낸 연극배우 이노미(李魯美)를 장녀로 두었다(김종원).

* 참고문헌
동아일보a 1931년 7월 11일 5면.
동아일보b 1936년 1월 31일 5면.
동아일보c 1956년 10월 18일 4면.
동아일보d 1972년 6월 1일 7면.
조선일보a 1935년 8월 16일 석간 3면.
조선일보b 1935년 10월 13일 석간 5면.
조선일보c 1936년 6월 10일 석간 2면.
경향신문a 1958년 8월 13일 4면.
경향신문b 1966년 2월 16일 6면.
김종원, 한국영상자료원 한국영화인 정보조사 및 DB구축 감수, 2011

[작성: 김영진]
[감수: 김종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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