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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숙희
Gang Suk-hui / 姜淑姬 / 1932 ~
대표분야
배우, 제작/기획
활동년대
1950, 1960, 197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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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우
:
세조대왕
(이규웅, 1970)
윤비
내마음 별과 같이
(정일택, 1963)
금옥
황진이의 일생
(윤봉춘, 1961)
황진이
처와 애인
(김성민, 1957)
선희(무용가)
기타정보
기타이름
강혜성 (姜慧星)
한국영화사료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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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잡지] 씨네팬 1960년 12월호
발행일
1960-11-01
영화인 정보조사
출처 : 한국영화인 정보조사
1932년(추정)에 경상북도 대구에서 태어났다. 1949년 미국의 대학으로 유학 가서, 연기를 공부하고 1955년 귀국했다고 한다(여성영화인사전). 귀국 후, 첫 영화가 1957년 <처와 애인>이었고, 이 영화에 함께 출연한 이택균과 결혼하기도 한다. 이후 남편과 함께 영화사인 이택균 프로덕션 영화사를 차리고 <황진이의 일생>(1961)을 직접 기획, 제작했으나 제작비의 반 정도를 날리는 흥행 실패를 맞는다(여성영화인사전). 이후 정동에 다방을 운영하기도 하나, 동업자와의 이윤 배분상의 문제로 마찰이 발생하고(동아일보), 사기 혐의로 구속되기에 이른다(경향신문). 1970년 배우가 아닌, 기획자로서 <세조대왕>(1970)을 기획한 것이 마지막 이력으로 남아 있다.
* 참고문헌
경향신문 1967년 7월 7일 3면
동아일보 1965년 5월 13일 7면
주진숙 외, 『여성영화인사전』, 도서출판 소도, 2001
[작성: 황미요조]
출처 : 여성영화인사전
강숙희 姜淑姬
-배우, 기획. 경북 대구 출생. 미국 벤버드 칼리지 졸업.
미국유학파 여배우로 강한 자의식의 소유자였던 강숙희는, 어쩌면 그 때문에 한국영화사에서 가장 불행한 여배우 중 하나가 되었는지도 모르겠다. 영화에 대한 애착 때문에 중앙영화사의 경리로 일하기도 했고 영화출연 제의도 여러 번 받았지만 강숙희는 힘들게 미국유학을 결심하게 된다. 49년 가을 미국 벤버드 칼리지의 플레이하우스에 입학한 그는 동양인으로서는 처음으로 세실 드밀이 세운 할리우드 스튜디오 클럽에서 생활하게 되었다, 이곳 친구들 사이에서 그는 ‘수우’라는 애칭으로 통했는데 특히 킴 노박이 그의 단짝이었다고 한다.
55년 4년 간의 연기수업을 마친 강숙희는 전란에 폐허가 된 한국으로 돌아왔다. 당시만 해도 외국에서 공부하고 온 사람이 드물었으므로 강숙희의 귀국이 화제를 불러일으켰음은 당연했다. 그러나 국제영화 B 기자의 말에 따르면, “그녀는 처음 한국에 나왔을 때 기자와의 인터뷰에서 지나치게 강한 자아를 주장했기 때문에 나중에는 어느 정도의 질투가 섞인 비난을 샀으며 영화계에선 사실상 고립되어 있었다.”
귀국 후 심사숙고 끝에 계약한 영화는 김성민 감독의 <처와 애인>(57)이었다. 이 작품에서 주연을 맡게 된 강숙희는 상대역이던 톱스타 이택균과 대담한 키스신을 연출하여 화제를 낳았는데 실제로도 그를 사랑하게 되었다.
이 사실을 눈치챈 측근들은 극구 반대하였으나 그들은 이 모든 장애를 무릅쓰고 56년 11월 28일 결혼했다. <처와 애인>은 사회에 커다란 반향을 일으켰으나 두 스타는 ‘다시는 너희들을 영화에 쓰지 않겠다’는 선고를 받았다.
강숙희와 이택균이 3년 동안의 침묵을 깨고 다시 영화계에 발을 디딘 것은 <황진이의 일생>(61)에서였다. 60년 8월 전 재산을 털어 직접 영화제작에 뛰어든 것이다. 윤봉춘감독, 방수일, 강숙희 주연의 <황진이의 일생>은 제작비가 부족해 빚까지 지는 우여곡절 끝에 61년 4월 29일 국제극장에서 개봉을 맞게 되었고 그 긴장된 분위기 속에 흥행은 여의치 않았다. 제작비 4천만 환이나 든 영화가 실패를 하고 빚이 1천7백여만 환에 달하게 되자 그들은 급기야 파산했고 이때 받은 충격으로 강숙희는 두 번이나 유산했다고 한다.(여선정)
출연
-57 처와 애인 -61 황진이의 일생 -63내 마음 별과 같이 -70 세조대왕
기획
-61 황진이의 일생 -70 세조대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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