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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구
Park Gu / 朴九 / 1911 ~ 1984
본명
박창석 (Park Chang-seok)
대표분야
감독, 제작/기획, 시나리오
활동년대
1950, 1960, 197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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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설공주
박구
박구
우리강산 차차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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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독
:
우리강산 차차차
(박구, 1971)
식모의 유산
(박구, 1969)
못잊어
(박구, 1969)
못다한 사랑
(박구, 1968)
여대생과 노신사
(민제, 1966)
울며 헤진 염춘교
(민제, 1965)
자식들
(민제, 1965)
피와 살
(민제, 1965)
백설공주
(민제, 1964)
식모
(민제, 1964)
주요경력
1957년 한국영화제작가협회 이사
1960년 한국영화제작가협회 이사
1963년 한국영화인협회 감독분과위원회 감사
1964년 연합영화사 부대표
1965년 한국영화인협회 감독분과위원회 부위원장
1967년 한국영화인협회 부이사장, 대종상 집행위원
1976년 영화인협회 감독협회 부위원장
1977년 영화인협회 감독협회 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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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타정보
기타이름
민제, 박민제
수상내역(영화)
1970년 문화공보부 장관상/
1971년 영화의 날 기념 문화공보부 공로상/
1980년 한국영화인협회 공로감사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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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인][구술로 만나는 영화인] 박구 - 나의 아버지 박구 감독
박구 감독님은 나의 아버지이자 나에게 영화 예술의 혼을 불러 넣어주신 스승이시다. 또한 아버님의 생애는 처절했던 우리나라의 근대사 만큼 인생의 시련속에 예술가로서 긍지를 버리지 않고 살아오신 분이기도 하다 음악가로, 이 나라 가극의 선구자로, 사진작가로...
by.
박경삼(명지대 교수, 한국애니메이션고등학교 교장)
2008-11-11
한국영화사료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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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잡지] 영화세계 1960년 3월호
발행일
1960-03-01
[영화잡지] 영화 1978년 11,12월호
발행일
1978-12-10
[영화잡지] 영화 1979년 1,2월호
발행일
1979-02-27
영화인 정보조사
출처 : 한국영화인 정보조사
1911년 함경남도 함흥에서 태어나, 일본음악전문학교를 나왔다. 유학 후, 조선에 돌아와 빅타 레코드의 연주자로 활동하다가, 한국 최초의 재즈 오케스트라인 히비키 재즈 오케스트라를 창단하고, 1942년부터 빅타 레코드사 소속의 연주단 '반도가극단'의 단장으로 활동하며 <장화홍련전>, <견우직녀> 등 설화를 바탕으로 한 사극을 주로 무대에 올린다. 해방과 전쟁을 거치며 영화 제작으로 영역을 넓혀 반도영화사를 설립하고 1956년 자신의 반도가극단이 올린 가극 <에밀레종>을 영화화하려 하나, 이 기획은 1960년 중앙문화사로 넘어가, 권영순 감독의 연출으로 진행되다가(동아일보), 결국 홍성기 프로덕션과 국제영화공사의 공동제작, 홍성기 감독의 연출로 1961년 제작된다. 반도영화사는 1957년 <속편 자유부인>과 <낙엽> 등을 제작하며 영화제작사로 첫발을 내딛는데(경향신문a,b), 특히 <낙엽>의 경우는 박성복과 공동 연출한 감독 데뷔작이기도 하다. 이어 <인생극장>(1959), <물망초>(1960)를 직접 연출, 제작하고, 1962년 영화법에 따라 동아영화(이병일), 후반기프로(이봉래). 신예프로(전홍직) 등과 함께 연아영화공사로 통합된 이후, 독립 프로덕션으로 일하며 1964년에는 군소제작사들의 연합체인 연합영화사의 부대표로 활동하기도 한다(경향신문c). 이후 <조강지처>(1963), <백설공주>(1964), <여대생과 노신사>(1967) 등을 거쳐 1971년 <우리강산 차차차>을 마지막 연출작으로 남기고 1984년 타계한다.
* 참고문헌
경향신문a 1957년 1월 31일 4면
경향신문b 1957년 9월 7일 석간 4면
경향신문c 1964년 3월 21일 5면
동아일보 1960년 8월 17일 석간 4면
[작성: 황미요조]
출처 : 한국영화감독사전
1911년 함경남도 함흥 출생. 일본 동경음악전문학교 졸업. 일본에서 귀국하여 반도 가극단을 창단, 백성희, 허장강, 김희갑, 김승호 등을 배출하였다.
1958년 영화 <낙엽>으로 데뷔했다. 여학교 교사인 진수와 그의 제자인 문주는 사랑하는 사이다. 그러나 문주는 아버지의 유언에 따라 현직 검사인 재식과 결혼한다. 그후 애인 진수는 어떤 사건으로 살인을 저지르게 된다. 그리고 도망을 친다. 연인이었던 진수가 사고친 사실을 알게 된 문주는 남편인 재식에게 도와 달라고 사정한다. 그러자 남편은 문주를 오해한다. 그후 진수와의 오해가 풀린다. 도망쳤던 진수가 떳떳이 나타나 법의 심판을 받기로 한 때문이었다. 신성일,문희,정민 출연.
<식모>(1964년)는 그의 취향이 비교적 두드러진 작품이다. 흥행도 호조를 보였다. 김지미 최무룡 허장강 황정순 출연. 사생아로 자란 그녀는 어머니와 사별하고 얼굴도 모르는 아버지를 찾아 서울로 올라온다. 그러나 아버지가 가정을 꾸미고 부인과 행복하게 사는걸 발견한 순간 차마 딸이라고 나서지를 못한다. 그리하여 그 집 식모로 자청하여 들어간다. 눈물의 나날이 계속된다. 어느날 일본에서 아버지의 친구가 찾아온다. 그 친구는 그녀를 알아보고 모든 사실을 밝힌다. 아버지는 그제사 딸을 끌어안고 지난날을 사죄한다. 최무룡, 허장강, 황정순 출연.
그는 주로 구수한 서민 취향인 멜로에 솜씨를 보인다. <인생극장>(1959년)<물망초>(1960년) <조강지처>(1963년) <식모>(1964년) <울며 헤진 염천교>(1966년) <자식들>(1966년) <식모의 유산>(1969년) 등 총 15편의 작품을 영출했다. 그는 초창기 감독협회 창설에 애를 많이 ?㎢? 그리곤 감독협회 회장을 역임하기도 했다. 1984년 사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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