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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진모
Jeong Jin-mo / 丁鎭模
대표분야
제작/기획
활동년대
1950, 1960, 197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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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모그래피 (
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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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작자
:
큰 댁
(김수용, 1965)
제작총지휘
사랑을 다시 하지 않으리
(최학곤, 1962)
내몸에 손을 대지 마라
(이규웅, 1961)
이별의 부산정거장
(엄심호, 1961)
대지의 어머니
(양주남, 1960)
사모님
(최훈, 1959)
오형제
(김화랑, 1959)
장마루촌의 이발사
(최훈, 1959)
모녀
(최훈, 1958)
주요경력
1960년 한국영화제작가협회 이사
한국영화사료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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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잡지] 국제영화 1962년 3월호
발행일
1962-02-25
[영화잡지] 국제영화 1962년 11월호
발행일
1962-10-20
영화인 정보조사
출처 : 한국영화인 정보조사
1950년대 한성영화사의 대표로 <장마루촌의 이발사>(1959), <지평선>(1961), <외나무다리>(1962) 등 흥행영화를 제작한다. 그러나 1961년 영화법 개정과 함께 법에서 명시한 조건에 의해 9개 메이저 영화사가 등록되고, 그 9개 제작사들에 속하지 못한 한성영화사와 다른 다수의 군소 제작사들은 대명제작을 하게 된다. 대명(代名)제작이란 등록된 9개 메이저 제작사 가운데 그 스스로 제작 편수를 충분히 채우는 제작사 이외의, 그렇지 못한 제작사들에게 할당된 제작 쿼터를 사다가 그 회사의 이름으로 제작하는 방식이다. 1964년 당시 그러한 대명 제작을 하는 군소 제작사들은 30여개가 되었다고 하는데, 이러한 대명 제작을 금지시키는 '자주제작 및 자주공연에 관한 규정'이 생겨난 이후, 한흥, 합동영화, 유한, 한성, 국제 등 군소 제작사들은 공동으로 '대한연합영화사'를 설립한다. 한성영화사의 대표였던 정진모 역시 이 회사의 설립에 가담하여 활동한다(경향신문).
* 참고문헌
경향신문 1964년 3월 21일 5면
[작성: 황미요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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