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창
Kim Yeong-chang / 金永菖 / 1918  ~ 
대표분야
제작/기획, 감독
데뷔작품
끝없는 하염없이 1959
활동년대
1950, 196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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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독 :
끝없이 하염없이 (김영창, 1959)
배우 :
(김동혁, 1965) 농군 A
적선지대 (이한욱, 1965) 기자 B
저 하늘에도 슬픔이 (김수용, 1965) 쓰리꾼
쌔드무비 (이한욱, 1964)

주요경력

1945년 전주극장 지배인
1948년 백도극장 책임자
1956년 청룡프로덕션 대표
1962년 은영사 대표
1964년 한국영화제작가협회 재건촉진위원회 상임위원
1982년 한국영화인협회 전북지부장

기타정보

수상내역(영화)
1972년 제10회 영화의 날 한국영화인협회 이사장 표창/
1982년 제20회 영화의 날 유공영화인 감사패 수상/
1984년 제23회 대종상 특별공로상/

영화인 정보조사

출처 : 한국영화인 정보조사
1918년에 전라북도 전주에서 태어났으며, 서울 협성실업학교(協成實業學校)를 졸업했다(국제영화). 일본인 소유로 있던 전주극장을 해방 직후에 위탁받아 운영하기 시작하면서 영화에 입문했다. 이후 1948년 전주 백도극장의 대표를 맡게 되었으며(전북일보a), 1954년 그곳에서 선전부장으로 일하던 이강천을 감독으로 기용한 <아리랑>의 제작을 맡으면서 제작자로서 활동을 시작했다(경향신문a, 전북일보b). <아리랑>과 이강천의 다음 작품 <피아골>의 연이은 성공에 힘입어 1956년 김영창은 다시 이강천과 함께 영화 <격퇴>를 제작하는데, 이때부터는 청룡프로덕션이라는 영화사를 설립하여 활동했다(경향신문a). 청룡프로덕션의 2회 작품은 그 이듬해에 제작한 <선화공주>인데 비록 16mm로 제작되었지만 “한국 최초의 천연색 영화” 타이틀을 얻었다(경향신문b, 전북일보a). 영화감독 데뷔는 1959년에 제작자를 겸해 만든 <끝없이 하염없이>를 통해서였는데, 제작 중이던 당시 신문에 기고한 칼럼에서 “뚜렷한 자기 스타일”을 지닌 “작가”를 지향하고 있음을 밝히기도 했다(동아일보a, b). 이후 다시 제작 및 기획자로 돌아가 <흰구름 가는 길>, <인력거>, <부산댁> 등을 제작했다. 1962년 기획을 맡은 김지미 주연의 <양귀비>는 도금봉 주연의 <천하일색 양귀비>와 경쟁이 붙어 화제가 되기도 했다(한국일보). 1963년 <강짜소동>과 <팔검객> 이후로는 상업 장편영화 활동 기록을 찾을 수 없는데, 주로 문화영화와 교육영화에 주력했다고 한다(전북일보a). 1984년 제23회 대종상에서 특별공로상을 수상했다(매일경제). 한국영화인협회에서 전북지부장을 맡았으며 작고하기 전까지 지역 영화발전에 애썼다고 한다(경향신문c, 전북일보a).

* 참고문헌
경향신문a 1956년 1월 13일자 4면
경향신문b 1957년 7월 31일자 4면
경향신문c 1982년 5월 11일자 12면
동아일보a 1959년 3월 4일자 4면
동아일보b 1959년 6월 14일자 4면
매일경제 1984년 12월 1일자 12면
전북일보a 1999년 1월 30일자
전북일보b 1999년 2월 27일자
한국일보 1961년 12월 3일자 석간 4면
韓國映畵人百人選, 『국제영화』제5권 제2호(1959년 1월 발행)

[작성: 김한상]
출처 : 한국영화감독사전
1917년 진주 출생. 원래는 영화 기획자였으나 1959년 <끝없는 하염없이>로 감독 데뷔했다. 최성진 한미나 이빈화 출연한 이 영화는 항일 투쟁 때문에 부모를 잃은 이복 자매의 애정 문제를 다루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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