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항
Jo Hang / 趙恒 / 1928  ~  1968
본명
조항의 (Jo Hang-ui)
대표분야
배우
활동년대
1950, 196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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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우 :
사화산 (고영남, 1969) 대대장(빨치산)
똘똘이의 모험 (김영식, 1968) 최계장
대원군 (신상옥, 1968) 이장염
풍운아 (임원식, 1968) 서랑장
낙엽 (강대진, 1968) 미스터 김
가로수의 합창 (강대진, 1968) 기무라(상해지구 특무대장)
몽녀(夢女) (임권택, 1968) 의사
잘돼갑니다(경무대 비화 잘돼갑니다) (조긍하, 1968)
칼맑스의 제자들 (강범구, 1968) 레닌모
공포의 18일 (조해원, 1968) 박상천(간첩두목)

주요경력

1946년 극예술연구회(劇藝術硏究會) 회원
1951년 극단 신극협의회(新劇協議會) 단원
1961년 극단 민극(民劇) 단원
1968년 극단 민예(民藝) 단원

영화인 정보조사

출처 : 한국영화인 정보조사
서울에서 태어났으며, 본명은 조항의(趙恒義)이다(국제영화). 동국대학교 국문과를 졸업했으며, 1946년 극예술연구회(劇藝術硏究會) 소속으로 무대 활동을 시작했다(김기제). 1951년에는 극단 신협(新劇協議會)에 가입했으며, 이후 극단 민극(民劇)에서도 활동하는 등 국립극단의 전속배우로 연극 활동을 이어나갔다(김기제, 경향신문, 동아일보). 1953년에는 정창화 감독의 <최후의 유혹>으로 영화배우로 데뷔했다(김기제). 이강천 감독의 <아름다운 악녀>(1958), 장황연 감독의 <시집살이>(1958), 이규환 감독의 <애련의 꽃송이>(1959) 등의 작품에서 주연을 맡았으며, 1960년대 후반까지 연극, 영화 양쪽에서 왕성한 활동을 펼쳤다. 1967년부터 제작에도 관심을 기울여 최무룡의 <서울은 만원이다>(1967)의 제작총지휘를 맡았으나, 1968년 <성황당>이라는 작품을 제작하던 중 과로로 쓰러져 투병 끝에 40세를 일기로 별세했다(동아일보). 배우 조형기의 아버지이다.

* 참고문헌
경향신문 1952년 11월 14일자 2면.
동아일보 1968년 7월 18일자 7면.
韓國映畵排優百人選(一), 『국제영화』제4권 제7호(1958년 8월 발행).
김기제 편, 『한국연예대감』, 성영문화사, 1962, 201쪽, 251쪽.

[작성: 김한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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