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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삼화
Kim Sam-hwa / 金三和 / 1935 ~
본명
김덕화 (Kim Deok-hwa)
대표분야
배우
활동년대
1950, 1960
DB 수정요청
소장자료
기본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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견우직녀
견우직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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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우
:
눈물에 젖은 왕관
(하한수, 1965)
공주(영조의 장녀)
진성여왕
(하한수, 1964)
모란후비
지옥은 만원이다
(이강원,이용민, 1964)
창녀
명동에 밤이 오면
(이형표, 1964)
미정
백마고지
(김수길, 1963)
진간호원(중공군)
차이나타운
(전창근, 1963)
로사
애정삼백년
(윤봉춘, 1963)
십이인의 야도
(강찬우, 1962)
새댁
(이봉래, 1962)
오수정
여자의 일생
(신경균, 1962)
주요경력
김삼화무용연구소 소장
관련글
더보기
<견우직녀> 촬영장에서 본 김삼화
김삼화(金三和, 본명 김덕화)는 자의식이 강한 여배우였다. 내가 그녀를 처음 본 것은안종화 감독이 <견우직녀>(1960)를 찍기 위해 제주도로 내려왔을 때였다. 나는 그때 안 감독의 헌팅 현장에 김삼화와 동행했다. 그뿐만 아니라 그녀가 이예성과 함께 나오는...
by.
김종원(영화사 연구자)
2018-08-20
한국영화사료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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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잡지] 신영화 1957년 12월호
발행일
1957-12-01
[영화잡지] 국제영화 1958년 7월호
발행일
1958-07-01
[영화잡지] 영화세계 1963년 6월호
발행일
1963-05-01
영화인 정보조사
출처 : 한국영화인 정보조사
서울에서 태어났으며, 서울대학교 미술대를 졸업했다(김기제). 6세부터 무용을 시작하여(서울신문) 조선무용연구소 한성준(韓成俊)에게 사사했으며(한국역대인물), 성신여중 재학 당시 15세의 나이로 미국 대통령 특사 환영연회에서 공연을 하는 등(자유신문) “천재 소녀 무용가”로 불리며 일찍부터 재능을 인정받았다(소년). 1955년 김기영 감독의 <양산도>에서 주연을 맡으며 영화 데뷔했다. 특기인 무용을 선보인 <논개>, 한홍합작 영화 <이국정원>, 궁중여인으로 분해 엄앵란과 칼싸움 활극을 선보인 <대도전> 등 15편 안팎의 작품에 출연했다. 영화 데뷔 이후에도 김삼화무용연구소를 운영했고(김기제), 드라마센터의 <한강은 흐른다>로 1962년 연극 무대에 서기도 했다(한국일보). 지적인 배경과 거침없는 언사로 “영화가의 독설가”로 불리기도 했다(국제영화). 영화 <흑과 백>(1927)의 제작, 감독, 출연을 맡았던 김택윤의 장녀로 알려져 있으며(이영일), 영화계 은퇴 후에 미국 마이애미로 이주하여 살고 있다고 한다(김종원).
* 참고문헌
경향신문 1957년 3월 29일자 4면.
서울신문 1962년 8월 30일자 4면.
자유신문 1948년 9월 21일자 2면.
한국일보 1963년 1월 6일자 7면.
단신, 『국제영화』 제5권 제2호(1959년 1월 발행).
천재 소녀 무용가 김삼화양 방문기, 『소년』제13호(1949년 8월 발행).
김기제 편, 『한국연예대감』, 성영문화사, 1962, 184-185쪽.
김종원 외, 『한국영화감독사전』, 국학자료원, 2004, 164쪽.
이영일 대담, 『한국영화사를 위한 증언록: 김성춘, 복혜숙, 이구영 편』, 소도, 2003, 215쪽.
한국학중앙연구원 한국역대인물 종합정보시스템 http://people.aks.ac.kr/index.aks
[작성: 김한상]
출처 : 여성영화인사전
김삼화 金三和
-배우. 본명 김덕화(金德和)
50년대 인기여배우였던 김삼화는 무용를 하다가 55년 <양산도>(김기영)에서 주연으로 데뷔하여 주목을 받았다. 6세 때부터 시공관에서 무용발표회를 하여 천재 무희로 불렸던 그는 <논개>(56, 윤봉춘)에 출연하면서 정상의 인기를 구가했다. 국제영화 60년 6월호에서는 “신비스러울 정도로 정화(淨化)된 양의 마스크는 세대의 차이를 극복하고 어떠한 작품에서든지 영합할 수 있다고 믿어진다. 그러나 아직까지는 별 신통한 연기를 보여주지 못하고 있다. 대사를 한번도 본인이 녹음한 일조차 없는 양에게 절실히 요구되는 것은 움직이고 말하는 것이다. 무용에 조예가 깊은 양은 너무나 리드미컬한 동작으로 말미암아 리얼한 맛을 잃고 있다는 점이 또한 유감스러운 일이다”라고 평하고 있다.
결혼 후 은퇴하였다가 이혼한 뒤인 62년 <대도전>(노필)에 주연으로 출연하고 연극 <한강은 흐른다>(드라마센터, 이해랑)에도 서며 재기하였다. 그는 영화계와 멀리한 자신을 반성하며 “제작가나 감독이 생각하는 어느 스타일의 국한된 연기밖에는 못하는 연기자같은 관념을 준 게 스타로의 출발이 잘못이었다는 후회와 나의 지나친 ‘프라이드’가 영화계 인사들과의 사이를 생소하게 만들었다는 자책 그리고 제일 중요한 것은 내 자신 나의 연기력에 대해서 고민”을 토로하고 “이제는 다시 화려하게 일해볼 자신이 생겼어요. 그간 연기공부도 해왔고 정신수양도 했으나 앞으로는 연기 면에 있어서의 감독명령도 고분고분 잘 듣고 그리고 아무 역할이나 맡아 하고 사람들과도 잘 사귀고…” 라며 각오를 다졌다. 영화산업의 급속한 팽창 속에서 쉽사리 배우가 되고 스타의 자리에 올라선 연기자의 고민과 난관을 그를 통해 짐작할 수 있다. 김삼화는 그 후 별다른 출연작을 내지 못한 채 기억에서 사라져갔다.(김수미)
출연
-55 양산도. -56 논개. -57 나는 너를 싫어 한다. -58 비련의 섬, 영원한 내 사랑, 이국정원, 첫사랑. -60 견우직녀. -61 연산군. -62 눈물어린 발자국, 대도전, 대심청전, 새댁, 여자의 일생, 폭군연산. -63 차이나타운. -64 명동에 밤이 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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