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미리
Nam Mi-ri / 南美里 / 1936  ~ 
본명
이정순 (Lee Jeong-sun)
대표분야
배우
활동년대
1950, 1960, 197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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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모그래피 (2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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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우 :
사랑의 스잔나 (김정용,송존수, 1976) 효정(추하의 모)
눈으로 묻고 얼굴로 대답하고 마음속 가득히 사랑은 영원히 (김영효, 1974) 장마담
천동 (이유섭, 1973) 첫녀
원녀 (이유섭, 1973) 김씨
부(父) - 기러기 가족 (윤정수, 1973) 부인
뜨거운 영광 (편거영, 1973) 성택 모
대학시절 (김영효, 1973) 하씨(김회장의 처)
어머니의 영광 (김기, 1973) 홍여사
김일병과 이쁜이 (강조원, 1973) 복례
누명 (서성욱, 1973) 마담

기타정보

주요기타작품
1960년 삼중인격 (팔월극장)
1964년 뜨겁고 위험한 애정 (현대극장)
1964년 마의 태자 (드라마센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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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인 정보조사

출처 : 한국영화인 정보조사
1936년 서울에서 태어났다. 이화여자대학교 정치외교학과를 다니던 중, 대만으로 건너가 동오대학교에서 영문학을 공부한다. 이때 만난 대만의 남성과 결혼하고, 1958년 한국으로 돌아온다(여성영화인사전). 그리고 한국에 돌아온 이듬 해, 이봉래 감독의 눈에 띠어 <행복의 조건>(1959)에 출연하며 연기자로 데뷔한다(동아일보). 이후 영화들에서의 연기한 인물들은 <청춘교실>(1963), <말띠 여대생>(1963), <말띠 신부>(1966) 등에서와 같이 주로 명랑한 신세대의 이미지들이다. 영화에 출연하는 한편, 연극무대에도 도전하여 1964년에는 유치진이 설립한 극단 '드라마센터'의 단원으로 그 창립작 <마의 태자>로 무대에 오르기도 하는 등(경향신문a) 연기 공부에도 열의를 보인다. 1968년 10월 영화의 날 기념식장에서 고별인사를 하며 잠정 은퇴하는데, 당시 출연작이 350여 편이었다고 한다(경향신문b). 그러나 2년 후인 1970년 아시아 영화제의 통역 요청을 수락해, 한국 대표단의 영어 통역을 맡고(매일경제), 그 해 7월 <할아버지는 멋장이>에서 양장점의 주인역을 맡아 컴백한다(경향신문c). 세련된 외모 덕에 노라노 의상실의 모델로 활동하는 한편, 머리모양, 유행 스타일 등 패션 관련한 신문 기사에서 모델로 빈번히 등장하기도 한다.

* 참고문헌
경향신문a 1964년 9월 5일 6면
경향신문b 1968년 10월 26일 5면
경향신문c 1970년 7월 18일 5면
동아일보 1959년 8월 21일 4면
매일경제 1970년 6월 9일
주진숙 외, 『여성영화인사전』, 소도, 2001

[작성: 황미요조]
출처 : 여성영화인사전
남미리 南美里

-배우. 1936년 11월 28일 서울 출생. 본명 이정순(李貞順). 이화여대 정외과 중퇴, 대만 동오대학에서 영문학 연구.

한국의 ‘M.M.' (마릴린 먼로)으로 불리던 남미리는 주로 어둠의 도시에 기거하는 ‘빠 걸’이나 ‘정부’역을 연기했다. 그러나 <폭풍의 사나이>(68, 박종호)에서 댄서 유미처럼 남미리의 이미지는 사악한 요부라기보다는 차라리 온화한 편에 속하는 ‘굿 배드 걸’에 가까웠다. <육체의 문>(65, 이봉래)에서는 언니(김혜정)의 애인을 빼앗아 언니의 삶을 파멸로 이끄는 DQN 역할을 맡았다. 돈을 버는 일이라면 매춘도 마다하지 않던 그 맹랑한 아가씨 역할의 남미리는 관능적이지만 육중한 느낌을 주는 김혜정과 대비되면서 독특한 매력을 발산했다. <말띠 여대생>(64, 백기림)에서는 ‘신식할머니’ 조미령의 손녀딸로 남편과 이혼하겠다고 소동을 피우는 철딱서니없는 신세대 새댁을 연기했다.
남미리의 비하인드 스토리 가운데 특히 유명한 것은 대만 청년과의 국제결혼이었다. 이대 재학 시절, 교제해오던 대만 청년과 결혼한 뒤 대만으로 떠났던 남미리는 그곳에서 동오대학에 입학하여 영문학을 연구하기도 했다(70년 한국영화배우를 대표해서 아시아영화제에 다녀올 정도로 영어가 유창했다고 한다.) 그러나 향수병에 시달리던 남미리는 결국 대만에서의 생활에 권태를 느끼고 58년 가을 한국으로 돌아왔다.
귀국 무렵 이미 10개월의 아들까지 둔 23세의 기혼녀였던 남미리는 당시 시나리오 작가였던 이봉래의 추천으로 영화계에 들어설 결심을 하게 된다, 그가 영화에 처음 얼굴을 내민 것은 59년 <행복의 조건>(이봉래)에서 였다. 그는 그늘 뒤에 가려진 조연이나 비중 있는 단역을 많이 맡아왔는데, 기혼녀가 그런 식으로 연기생활을 시작한다는 것은 사실 전례가 없는 것이었다. 배우생활은 결코 허영이나 사치가 아니라고 공언하던 그는 단역부터 차근차근 실력을 쌓고 싶어했다. 배우로서의 경력 외에도 한때 남미리는 한 눈에 일별할 수 있는 세련됨 덕분에, 당시 한국의 패션을 주도하고 있었으며 수많은 영화의상을 담당하기도 했던 디자이너 노라노의 패션 모델로 활동하기도 했다.(여선정)

출연
-59 구혼결사대, 다시 피는 꽃, 복도 많지 뭐유, 행복의 조건. -60 려인, 모상, 신부여 돌아오라, 젊은이의 양지, 피는 살아 있다. -61 구봉서의 벼락부자, 노다지, 서울의 지붕 밑. -62 견습부부, 남자는 안팔려, 동경서 온 사나이, 맹진사댁 경사, 신입사원 미스터 리, 싸우는 사자들, 아버지와 목마, 악인은 없다, 어딘지 가고 싶어, 여차장, 잊을 수 없는 애정, 특등신부와 삼등신랑, 한많은 미아리고개. -63 검은 꽃잎이 질 때, 검은 불연속선, 검은 장갑, 귀국선, 나는 비밀이 있다, 로맨스 가족, 사랑은 주는것, 사장 딸은 올드 미스, 아빠 안녕, 지미는 슬프지 않다, 처와 그 여인, 차이나타운, 키스미, 햇님왕자와 달님공주. -64 내 마음은 호수, 말띠여대생, 배만 나오면 사장이냐, 석가모니, 신식할머니, 아가씨들 조심하세요, 연애졸업반, 연애할 시간 없다, 욕망의 결산, 월급봉투, 위험한 육체, 육체의 고백, 이거됩니까 이거 안됩니다, 죽자니 청춘 살자니 고생, 처녀성, 총각김치. -65 과부의 딸, 국제간첩, 나는 죽기 싫다, 너를 노리고 있다, 어떤 정사, 육체의 문, 한많은 석이 엄마, 홍도야 우지마라. -66 내 청춘 황혼에 지다, 말띠신부, 맹호작전, 보경아가씨, 불타는 청춘, 적선지대. -67 그래도 못잊어, 기분파 아가씨, 연인의 길, 치맛바람. -68 동문서답, 여마적, 정든님, 파란 이별의 글씨, 폭풍의 사나이. -69 남의 속도 모르고. -70 밤차로 온 사나이, 속눈섭이 긴 여자, 타인의 집, 할아버지는 멋쟁이. -71 내 아들아, 다섯개의 단검, 사랑을 빌립시다. 12여인, 위자료, 한국 제일의 사나이, 홍콩서 온 철인 박. -72 늑대와 고양이들, 유령소동, 집을 나온 여자, 힘. -73 나와 나, 대학시절, 원녀. -76 사랑의 스잔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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