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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필
No Pil / 盧泌 / 1928 ~ 1966
대표분야
감독, 편집
활동년대
1940, 1950, 1960, 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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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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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독
:
밤하늘의 부르스
(노필, 1966)
애수의 밤
(노필, 1965)
검은 상처의 부르스
(노필, 1964)
빗나간 청춘
(노필, 1964)
복면대군
(노필, 1963)
사랑과 죽음의 해협
(노필, 1962)
대도전
(노필, 1962)
붉은 장미의 추억
(노필, 1962)
별의 고향
(노필, 1961)
심야의 고백
(노필, 196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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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하늘의 블루스로 막 내린 인생극장
1966년 4월 3일, ‘1966년을 장식하는 뮤지컬 멜로드라마’임을 자부하는 영화 한 편이 개봉됐다. 음악영화에 어느 정도 이력이 붙은 최무룡과 태현실이 주연을 맡은 <밤하늘의 부르스>, 감독은 노필이었다. 광고 문구는 거창했으나, 사실 음악영화 ...
by.
이준희(대중음악비평가)
2012-05-21
한국영화사료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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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잡지] 영화TV예술 1966년 9월호
발행일
1966-08-20
[영화잡지] 내외영화 1966년 8월호
발행일
1966-08-01
영화인 정보조사
출처 : 한국영화인 정보조사
1928년 서울에서 출생했다. 이규환과 이용민 감독 밑에서 영화수업을 받은 그는, 십여 년간의 조감독 생활의 연륜을 축적한 신인감독이자 끈기 있는 노력형으로, “새로운 의욕을 뿜어줄 신인감독군상” 중 한명으로 거론되던 기대주였다(동아일보). 그의 감독 데뷔작은 1949년 비행사 안창남의 전기영화로 제작된 <안창남 비행사>로, 항일영화적 색채를 띠고 있는 작품이었다. 이후 김신재, 이빈화 주연의 <그 밤이 다시 오면>(1958), 김진규, 문정숙 주연의 <심야의 블루스>(1960), 한운사의 방송극 원작인 <그 이름을 잊으리>(1960), 김지미가 출연한 <붉은 장미의 추억>(1962), 신필름에서 제작한 <빗나간 청춘>(1964) 등 다수의 멜로드라마를 연출하였다. 국도극장에서 개봉하여 십만 명의 관객을 동원한 <밤하늘의 블루스>를 유작으로 남기고 1966년 38세의 나이에 자살로 생을 마감했다. 빚에 허덕일 정도로 가난했던 노필 감독의 장례비 마련을 위해 많은 영화인들이 동분서주하며 그의 죽음을 추모했다(경향신문).
* 참고문헌
동아일보 1959년 1월 7일자 4면.
경향신문 1966년 7월 30일자 7면.
김종원 외, 『한국영화감독사전』, 국학자료원, 2004.
[작성: 김한상]
출처 : 한국영화감독사전
1928년 8월 25일 서울 출생. 감독 데뷔작은 <안창남 비행사>(1949)였다. 공군 항공대의 제작 후원을 받아 제작된 이 영화는 안창남이 고난 끝에 일본인을 누르고 비행사가 되어 민족의 울분을 달래고, 해방 후에는 항공개발에 앞장선다는 내용의 전기영화였다.
데뷔작 이후 10년 동안 작품 활동을 하지 않았던 노필이 차기작을 낸 것은 1958년 <그 밤이 다시 오면>이었다. 정비석 원작의 이 영화는 부모 없이 자란 남매의 애환을 다룬 영화이다. 이듬해 노필은 <꿈은 사라지고>(1959)를 연출했다. 유망한 권투선수가 자신의 애인이 카바레 여급인 줄 몰랐다가 그 사실을 알고 괴로워한다. 결국 코치의 끈질긴 설득으로 금메달리스트가 된다는 내용이다. 특이한 것은 이 영화의 주제가를 최무룡이 불러 화제가 되었다는 점이다.
1960년에 노필은 통속물 <심야의 블루스>를 연출했다. 건축회사에 입사한 한 남자가 동료 사원과 사랑을 하지만 부모의 강요로 고향 처녀와 약혼을 한다. 그러나 약혼 후에도 동료와 사랑을 나누는 약혼자의 처지를 안 고향 처녀는 자살을 기도한다. 결국 그는 미수에 그친 시골 처녀에게 돌아간다. 그후 노필은 1966년까지 매해 한 편에서 세 편 정도의 통속물을 연출했지만, 이전처럼 흥행에 성공하지는 못했다.
그는 1949년에 감독 데뷔해서 1966년 마지막 작품까지 총 16편을 연출했지만, 그가 통속극으로 세인의 관심을 끈 것은 대략 1950년대 후반에서 1960년대 초반까지였다. 전쟁의 폐허에서 벗어나 한국영화가 황금기를 구가하던 그때 노필의 영화는 관객들에게 시름을 잊게 만드는 청량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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