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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선태
Joo Sun-tae / 朱善泰 / 1921 ~ 198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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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0, 1950, 1960, 1970, 198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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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파도위에 엄마 얼굴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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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한국영화인 정보조사
1921년 함경북도 길주에서 태어났다(경향신문). 22세 때 연극배우로 연기활동을 시작해, 1947년 이규환 감독의 <민족의 새벽>으로 영화배우로 데뷔했다. 이후 장황연의 <청춘행로>(1949), 한형모의 <운명의 손>(1954), 이병일의 <시집가는 날>(1956), 이강천의 <백치 아다다>(1956), 전창근의 <마의 태자>(1956) 등에서 개성 있는 조연으로 출연했다. 하지만 그를 대중적으로 각인시킨 작품은 1956년 한형모 감독의 <자유부인>이다. 여기서 그는 능청스런 연기를 뽐내며 “최고급품으로 주시오”라는 대사를 유행시켰다. 이후 1960-70년대에 3백여 편 이상의 작품에서 심통 맞은 사장이나 사기꾼 등을 연기하며 활발히 활동했다. 또한 그는 TBC TV에서도 다양한 드라마에 출연했는데 주로 인자한 노인역을 맡았다. 또한 극단 신협(新劇協議會)의 배우로서 <오셀로>, <왕자호동> 등의 연극에도 출연했다(동아일보). 1989년 노환으로 별세했다(한겨레).
* 참고문헌
경향신문 1989년 8월 23일자 4면
동아일보 1989년 8월 23일자 16면
한겨레신문 1989년 8월 24일자 12면
[작성: 김한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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