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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형래
Shim Hyung-rae / 沈炯來 / 1958 ~
대표분야
배우, 감독, 제작/기획
활동년대
1980, 1990, 2000, 2010
DB 수정요청
소장자료
기본정보
영상자료
(1)
동영상(1)
이미지
(84)
스틸(63)
스틸필름(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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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구와 땡칠이 4탄-홍콩 할매귀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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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영상 (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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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이킹
00:02:00
라스트 갓파더 : 메이킹 영상 : 2010
필모그래피 (
7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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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독
:
추억의 붕어빵
(심형래, 2011)
라스트 갓파더
(심형래, 2010)
디 워
(심형래, 2007)
2001 용가리
(심형래, 2000)
용가리
(심형래, 1999)
드래곤 투카
(심형래, 1996)
파워킹
(심형래, 1995)
영구와 우주괴물 불괴리
(심형래, 1994)
티라노의 발톱
(심형래, 1994)
핑크빛 깡통
(심형래, 1993)
주요경력
1986년 동양기기 사장
장원실업 사장
1999년 제17회 소파상 어린이예술부문
1999년 6월 국민회의 경제대책위원회 운영위원
1999년 9월 용인대학교 멀티미디어학과 겸임교수
1999년 9~10월 하남국제환경박람회조직위원회 홍보위원
~1999년 12월 영구아트무비 대표
1999년 12월~2011년 9월 영구아트 대표이사 사장
2000년 10월~2005년 11월 환경부 환경홍보사절
2002년 3월 웰컴투코리아시민협의회 홍보위원
2007년 공군 정책발전자문위원회 정책자문위원
2007년 11월 한국CEO 그랑프리 홍보대사
2007년 제3회 한국CEO 그랑프리 문화CEO상
2007년 제14회 대한민국 연예예술상 특별상
2007년 제8회 대한민국 국회대상 특별상
2007년 잡지인이 선정한 올해의 인물상
2008년 4월 서울특별시 강서구 명예홍보대사
2008년 벤처 코리아 벤처기업대상 벤처기업부문 산업포장
2008년 10월 교육과학기술부, 문화체육관광부 문화예술인 명예교사
2009년 5월 u-Life 아이디어 공모전 홍보대사
2014년 영화 <디워: 미스테리즈 오브 더 드래곤(D-War: Mysteries of the Dragon)> 준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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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타정보
수상내역(영화)
2007년 제15회 한국인기연예대상 영화부분 감독상 <디 워>/
2007년 제28회 청룡영화제 최다관객상 <디 워>/
2007년 제6회 대한민국영화대상 시각효과상 <디 워>/
2008년 제45회 대종상 영상기술상 <디 워>
수상내역(기타)
■ TV
1982년 제1회 KBS 개그콘테스트 동상/
1988년 KBS 코미디 대상
영화인 정보조사
출처 : 한국영화감독사전
1958년 서울 출생. 서울 영등포구 문래동에서 5남매의 막내로 태어났다. 고려대학교에서 식품공학을 전공하고, 졸업한지 2년이 지난 1982년 KBS 제1기 개그 콘테스트에서 동상을 받고 개그맨으로 입문했다. TV 코미디 프로그램을 통해 인기를 얻은 ‘바보 영구’ 캐릭터를 이용한 <우뢰매>(1986)시리즈와 <영구와 땡칠이>(1989), <영구와 흡혈귀 드라큐라>(1992), <영구와 아기공룡쭈쭈>(1992) 등 영구 시리즈 어린이 영화에서 주인공으로 활약하며 전국 초등학생들의 스타가 됐다. 1989년 여름에 개봉된 남기남 감독의 <영구와 땡칠이>는 공식적인 기록은 아니지만 전국 2백만 명의 관객을 동원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의 첫 연출작은 영구 시리즈 중의 하나인 <영구와 아기공룡 쭈쭈>였다. 이 영화는 심형래가 오늘날까지 지속적으로 관심을 기울여 온 ‘괴수영화’의 시작이라고 할 만 했다. 한편에서 저급한 아동영화로 조악한 화면구성과 단순한 줄거리의 문제점을 지적하기도 했지만 영화감독으로서 심형래의 열정은 확고했다. 1993년 ‘영구아트무비’라는 영화사를 설립한 후 직접 제작과 감독, 주연을 맡아 꾸준히 SF 장르에 몰두해온 그는 특수효과촬영을 비롯한 기술개발에 과감한 투자와 지지를 아끼지 않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핑크빛 깡통>(1994), <티라노의 발톱>(1994), <파워킹>(1995), <드래곤 투카>(1996), <용가리>(1999)등이 그가 만들어 온 영화들이다. 야심작이었던 <티라노의 발톱>은 24억원이라는 제작비를 쏟아 부었는데, 당시 한국영화 제작환경을 고려하면 엄청난 액수였다. 하지만 1천억원의 제작비를 들인 스티븐 스필버그의 <쥬라기 공원>이 수입되면서 <티라노의 발톱>은 무참히 간판을 내려야 했다. 하지만 심형래는 자신의 영화에 대한 열정을 새롭게 불태우며 재기를 꿈꿨다. 그렇게 해서 만든 영화가 <파워킹>, <드래곤 투카>였다. 이 영화들은 기존의 심형래 영화가 보여 주었던 조악함이 많이 없어졌지만, 여전히 어린이들의 수준을 벗어나지 못했다.
하지만 심형래는 1998년 5월, 롯데 호텔에서 <용가리> 제작 발표회를 열면서 “이제 10년간 노하우를 쌓았으니 <쥬라기 공원> 못지않은 영화를 만들어 수출할 것”이라고 야심만만한 자신의 프로젝트에 대해 설명했다. 그리고 그는 무엇보다 비주얼 중심의 영화, 보편적인 주제, 안정된 자본과 기술력에 의한 자체 제작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용가리> 1998년 5월 칸 영화제 필름 마켓에서 2백 72만 달러의 사전판매를 성공시키며 이후 11월 밀라노 영화제에서 미국 메이저 배급사인 워너브라더스와 트라이스타 그리고 일본의 토에이 영화사와 계약해 세계적인 배급을 가시화 하는 등 상당히 뉴스거리가 많았다.
그러나 110억원의 제작비를 들인 <용가리>는 1999년 여름 국내개봉 당시 서울 관객 52만, 전국 관객 150만이라는 흥행성적에도 불구하고 컴퓨터그래픽의 한계와 여전한 조잡함으로 인해서 관객들의 평가는 대체로 무척 불만스럽다는 것이었다. <용가리>의 업그레이드 버전이라 할 수 있는 <용가리 2001>은 2001년 2월에 개봉되어 몇몇 여전한 아쉬움을 남겼지만 <용가리>에 비해 여러 가지 가능성을 보여 주었다. 그리고 2001년 가을 미국의 비디오 시장에서 꽤 성공을 거두어 7주 동안 124만 달러의 수익을 올렸다고 한다.
한국인의 자본과 기술력으로 야심 차게 도전한 그의 노력은 여러 방면에서 인정받아 아시아 위크지 “컴퓨터와 기술공학 부문"에 ‘21세기 아시아 지도자’로 선정되기도 했으며 영국영화특수효과 전문지 SFX는 <용가리>의 소재, 구성, 예고편을 최고로 평가하기도 했다. 1999년에는 방정환 재단 소파상 예술부문 수상했으며, 첫 번째 ‘신지식인’으로 선정되어 CF 출연을 비롯해서 대학 강단에 서기도 했다. 최근 한 단계 향상된 기술력과 노하우로 역시 괴수영화 <드래곤 워즈>를 준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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