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기풍
Choi Ki-poong / 崔起風 / 1949  ~ 
본명
최창규 (Choi Chang-kyu)
대표분야
감독, 무술(스턴트)
데뷔작품
무인 1984
활동년대
1980, 199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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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모그래피 (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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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독 :
소낙비 (최기풍, 1995)
불꽃슛 통키 (최기풍, 1993)
삼중성 (최기풍, 1991)
꿈꾸는 식물 (최기풍, 1990)
춘화춘풍 (최기풍, 1989)
끝없는 욕망 (최기풍, 1988)
강시 훈련원 (최기풍, 1988)
독불장군 (최기풍, 1987)
무인 (최기풍, 1984)

주요경력

1970년년 신필름 입사
1971년년 배우협회 입회
1975~76년 은하극단 <벽속의 회전목마> 외 2편의 연극 출연
1974~80년 무술감독 겸 연기자
1984년 감독,시나리오 협회 입회
1985년 배우협회 이사
1985~98년 한국영화 아카데미 강사

기타정보

영화계 입문배경
사춘기 시절부터 영화에 관심이 많아 기회가 닿으면 영화쪽에서 일하고 싶어했다. 그러던 중 선배의 소개로 신필름에 배우로 입사하면서 영화 활동을 시작했다. 그 후 전속 배우로 활동했으며 액션배우로 알려지기 시작했으며 그와 함께 무술 감독을 겸하게 되었다. 그러나 배우로서의 한계를 느껴 배우 생활을 그만두고 시나리오를 썼다. 그동안 연출 분야에 대해 관심이 있었으며 84년[무인]으로 데뷔하게 되었다.
주요 영화작품
무인(1984,최기풍)
독불장군(1987,최기풍)
끝없는 욕망(1988,최기풍)
강시훈련원(1988,최기풍)
춘화춘풍(1989,최기풍)
꿈꾸는 식물(1990,최기풍)
삼중성(1991,최기풍)
불꽃 슛 통키(1993,최기풍)
소낙비(1995,최기풍)
애착작품 및 사유
모든 작품에 애착이 간다. 다른 사람들이 삼류로 치부하는 영화도 만드는 동안 주어진 환경에서 최선을 다했기 때문이다. 물론 아쉬움이 남는 작품도 있으나 모든 작품을 열심히 만들었기 때문에 그 어느것 하나도 애착이 가지 않는 것이 없다.
영화속 명소
관심분야가 시대물이기 때문에 전통 가옥이 잘 보존된 마을에 대해 특별히 관심이 많다. 민속촌은 실제감을 결여하고 있으며 세트의 느낌을 주기 때문에 선호하지 않는다. 잘 보존된 전통 가옥에서 사시는 분들을 보면 저절로 존경심이 우러나오는 동시에 아쉬움도 느낀다. 그곳에서 불편하게 사시는 분들의 어려움을 들을 때는 정부의 보조가 필요하다는 것을 절실하게 깨닫는다. 보조금은 우리의 문화를 지키기 위한 최소한의 투자라 생각한다.
추구하는 스타일/배역
시대물 특히 우리의 정체성에 대해 반추하는 소재에 관심이 많다. 우리는 우리의 이야기를 해야 한다고 생각하며 그러기 위해서는 우리만의 소재와 주제를 발굴 형상화해야 한다고 본다. 김유정의 단편을 장편영화로 만든[소낙비]에 이어 김동리의 [황토기]를 영화화하기 위해 구상중이다. 액션영화에 대한 관심역시 있지만 한국의 영화제작 현실에서 양질의 액션영화제작에 많은 어려움이 있다.우선 제작 자본이 미약하고 액션영화에서 미약한 자본으로는 좋은 영화를 만들 수 없다. 따라서 소자본으로도 제작 가능하고 우리의 모습을 비춰주는 시대물에 집중하고 있다.
수상내역(영화)
1994~95년 몬트리올 영화제 오늘의 영화부분 초청작 <소낙비>

영화인 정보조사

출처 : 한국영화감독사전
1980년대 중국무협영화의 영향을 받은 한국무협영화가 붐을 이룰 당시 <무인>(1984)을 감독하였다. 이 영화는 무인이 약혼녀를 찾으러 길을 떠났다가 완수하고 다시 돌아온 과정을 그린 영웅 신화의 내러티브를 보여준 전형적인 작품이다. 유성은 몽고군에 의해 집안이 약탈당하고 식솔들이 살해되는 것을 목격한다. 약혼녀 수련을 찾는 일과 집안의 복수를 위해 몽고로 떠난다. 그곳에서 용태산에게 잡히나 그의 아들 우의 도움으로 목숨을 건지며 노승으로부터 무인의 길에 대한 가르침을 받게된다. 용태산과 ㄱ의 부하들에 의해 수련을 잃고 그를 죽이려하나 복수의 마음을 돌려서 귀국의 길에 오른다. 무인이 복수를 위해 장도에 올랐다가 다시 돌아오는 과정을 다룬 영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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