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현목
Yu Hyun-mok / 兪賢穆 / 1925  ~  2009
대표분야
감독, 제작/기획
데뷔작품
교차로 1956
활동년대
1950, 1960, 1970, 1980, 1990, 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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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독 :
한국 영화 회고전 - 유현목 감독 작품(촬영본) (유현목, 2002)
말미잘 (엄마와별과말미잘) (유현목, 1994)
조국의 등불 (유현목, 1990)
상한 갈대 (유현목, 1984)
사람의 아들 (유현목, 1980)
다함께 부르고 싶은 노래 (유현목, 1979)
장마 (유현목, 1979)
옛날 옛적에 훠어이 훠이 (유현목, 1978)
문(門) (유현목, 1977)
불꽃 (유현목, 1975)

주요경력

1947. 동국 대학교 영화예술 연구회 창설, 회장. 작품 '海風' 제작. 1947년부터 조감독 생활(조정호,임운학,김성민,정창화,장화연,이규환,김흥감독 등)
1955. 영화감독 독립
1963. 동국 대학교 연영과 강사, 씨네.포엠 클럽 창설, 회장, 실험영화 <線><손>제작
1964. 각 신문 新春文藝 심사위원(계속)
1965. 서을 연극학교 (드라마 센터) 강사, 서울 市文化賞 심사위원(계속)
1966. 세계문화자유회의 회원. 이곳 세미나에서 <은막의 자유>발표, 이만희 감독이 <7인의 여포로>로 입건된 것을 항의, 반공법 위반으로 기소, 무죄.
1969. 미,영,독 정부초청으로 20여개국 영화계 시찰
1970. 한국소형영화동호회 창설, 회장
1971. 대한민국 문화예술상 집행위원, 심사위원(계속), 미스 코리아 심사위원(계속)
1975. 영화인협회 부이사장, 한국일보 예술상 심사위원(계속), 서울 市文化賞, 대종상 심사위원(계속)
1976. 동국 대학교 연극영화과 교수 취임, 감독 위원회 고문
1991. 春史영화제 심사위원장, 日,韓 문화협회초청 영화계 시찰, 동국대학교 정년퇴임, 명예교수(계속 출강)
1993. 일본문화연구회 회원, 한국 자유연맹 이사
1994. 三 . - 문화상 심사위원

기타정보

영화계 입문배경
단신으로 월남(越南)한 후 동국대 국문학과에 진학한 후, 이 무렵 유행병처럼 번지던 연극에 심취하게 된다. 국립 도서관에서 '시나리오 강좌', '희곡과 시나리오의 유사성' 같은 책을 읽으며 연출가의 꿈을 불태우던 시절 영화에 관심을 기울이기 시작한 것은 해방 후 밀려 들어오기 시작한 명화(名畵), 특히 프랑스 '피에르 슈날' 감독의 <죄와 벌>에 매혹되어 거듭 열 네 번이나 보고나서 부터. 시나리오 작가로 방향을 전환한 나는 오명전 선생이 국립 도서관에서 처음으로 주최한 시나리오 강좌를 청강한다. 이 때 오영진 선생의 '시나리오 작가는 무엇보다 촬영 현장 체험이 중요하다'는 말을 가슴깊이 새긴 감독은 강의가 끝나면 당시 찰영중이었던 '최인규' 감독의 <자유만세> <죄 없는 죄인> 등의 현장을 찾아 온 종일 돌아다닌다. 그러던 어느날, 현장 경험을 하기위해 엑스트라라도 할 요령으로 조정호 감독의 <김상옥 혈사> 배우모집에 응시하지만, 실기 구두시험에서 조정호 감독은 얼굴이 못 생겨서 배우는 안 되겠고 필답시험이 유일하게 만점이니 조감독 일을 맡는 것이 어떻겠냐고 권유하여.
주요 영화작품
교차로(1956,유현목)
유전의 애수(1956,유현목)
잃어버린 청춘(1957,유현목)
그대와 영원히(1958,유현목)
인생차압(1958,유현목)
구름은 흘러가도(1959,유현목)
오발탄(1961,유현목)
성웅 이순신(1962,유현목)
아낌없이 주련다(1962,유현목)
김약국집 딸들(1963,유현목)
푸른 꿈은 빛나리(1963,유현목)
잉여인간(1964,유현목)
아내는 고백한다(1964,유현목)
순교자(1965,유현목)
춘몽(1965,유현목)
태양은 다시 뜬다(1965,유현목)
특급 결혼작전(1966,유현목)
종야(1967,유현목)
한(1967,유현목)
막차로 온 손님들(1967,유현목)
카인의 후예(1968,유현목)
악몽(1968,유현목)
몽땅 드릴까요(1968,유현목)
수학여행(1969,유현목)
나도 인간이 되련다(1969,유현목)
두 여보(1970,유현목)
분례기(1971,유현목)
불꽃(1975,유현목)
문(1977,유현목)
옛날 옛적에 훠어이 훠이(1978,유현목)
다함께 부르고 싶은 노래(1979,유현목)
장마(1979,유현목)
사람의 아들(1980,유현목)
상한 갈대(1984,유현목)
엄마와 별과 말미잘(1995,유현목)
애착작품 및 사유
'오발탄' - 1960년 동인문학상 수상 후보 작품인 이범선씨의 동명 단편소설을 영화화한 이 작품은 자유당 말기인 59년 말, 한국 최초의 조명기사 김성춘씨가 뜻있는 영화 한 편을 만들겠다며 사재를 털었고 이러한 제작자의 의도에 동감한 모든 연기자, 스텝들이 최소한의 개런티로 봉사하여 13개월만에 완성되어진 작품이다. 그러나 당시 사회의 어두운 면만 부각시켰고, 영화중 노파의 "가자"는 방향이 어디냐가 문제가 되어 결국 5.16 군사혁명 정부로부터 상영중지를 당하기에 이르렀다. 그러다가 샌프란시스코영화제 출품을 계기로 상영중지 27개뭘만인 63년에 을지극장에서 다시 빛을 보게 되었다. 이 작품을 제작하면서 여러 가지 면에서 상당히 어려움이 많았다. 워낙 어두운 작품이라 흥행은 말할 것도 없었지만, 이 작품이야말로 냉엄한 사회에서 신이 발사한 오발로 인해 '목적을 상실하고 표류하고 있는 우리들의 모습이라는 생각에 정성을 다해 만들었다. 영화 테크닉 측면에서도 그 동안의 배우 위주 기법에서 적극적 카메라 앵글과 몽타쥬로 테크닉의 개혁을 시도했다. 2000년초 [조선일보]와 [월간조선]이 투표선발한 행사에서 <오발탄>이 20세기에 남을 명작 [베스트 텐]에서 제 1위를 차지했다.
순교자 - 순교자는 인간이 항상 의문을 가지고 있는 진리, 신앙, 수난, 전쟁, 삶 등의 근원적인 문제를 전화에 휩쓸린 상처투성이의 도시 평양을 무대로 하여 '미스테리'형식으로 다룬 작품이다. 재미 한국인으로 당시 12개 국어로 이백여 판이 나을 만큼 센세이션을 일으켰던 리차드.E 킴(김은국)월 세계적 베스트 셀러 <순교자>를 영화화 한 것이다. <순교자>는 독립프로덕션을 갖고 만든 첫 작품이었는데 장소와 소품 때문에 고생을 많이 하였다. 파괴된 6.25 당시의 정양시가 장면이 많이 있어 평양시가와 흡사한 곳을 찾아 전국을 돌아다니다 마포 형무소 자리에 오픈 세트를 지어 그럴싸한 평양시가를 재현시켰다. 또한 막 여름에 접어들려는 그때에 겨을철 전쟁신을 위한 소모품도 만만치 않았다. 품목을 보면 겨울철 설경을 위해 회가루 95포, 닭털 두 트럭, 소금 25가마, 완전무장 장비 550명분, 트럭 60대, 지프차 35대, 앰블린스 5대 등등이 동원되어 그 당시의 내 작품 중 가장 대규모의 스펙터클한 것이었다. 영화촬영때도 고생을 하였지만 65년 명보극장에서 개봉후 기독교계에서 상당한 물의가 일어 곤욕을 치렀다.
영화속 명소
영화예술에서는 '포토제니'란 말을 흔히 쓴다. 포토 즉 사진과 제니(genie) 즉 정령의 합성어로서 사진의 내부에 깊숙이 간직되어 있는 정령 즉 혼 또는 생명을 중요시하는 수법을 한다. 스크린에 나타난 자연과 산과 들, 강줄기들은 그저 있으니까 찍은 게 아니라, 스크린 뒤에 숨어 있는 혼과 생명을 표현해 그 내부 깊숙이 간직되어 있는 '정신적 가치의 증대'를 꾀해야 한다는 얘기이다. 나는 조감독 생활을 합쳐 근 반세기 동안 이나라 방방곡곡을 돌아다녔다. 발길이 닿지 않은 곳이 없는 것 같다. 따라서 어느 한 장면, 어느 한 곳 정(情)이 서려있지 않은 곳이 없다. 나는 앞으로 이러한 '예술의 시간과 공간'을 모아 아름답게 정리하고자 한다. 시간이 걸 리더라도 망중한(忙中閑)하는 심정으로 기다려 주기 바란다.
추구하는 스타일/배역
"영화를 만들면서 흥행성을 염두에 둔 적이 없었다. 단지 내가 말하고 싶은 것을 예술적으로 창조할 수 있으면 그것으로 끝이라고 생각했다. " 영화의 주소재는 산업사회의 비인간화나 부정부제, 이데올로기 갈등등 인간들의 내면적 문제이며 그것도 현실을 등지지 않고 현실 속에서 끈적거리며 발버둥치는 인간의 내면적 세계의 절망적 갈등과 그 구원의 문제이다. 흔히 영화분위기가 심각하면서도 어둡게 느껴지는 것은 감독이 그리는 세계가 어려운 상황 속에서의 현실을 극복하고자 몸부림치는 주인공의 강렬하고 처절한 의지가 아름답게만 묘사될 수 없기 때문이다. 영화인의 길로 들어서고 얼마동안 그러니까 '오발탄' 으로 대표되는 전반기의 작품들은 발딛고 서 있는 현실이 모순으로 가득찬 세계임을 알리는 고발장이다. 좌절, 절망, 불 안함등이 사실적으로 그려져 있다. 그러나, 거기에 救濟는 없다. 어두운 현실에 처절하게 대항하는 몸부림만 있을 뿐이다. 그 뒤 관심은 인간내부를 파고든다. 인간의 마음의 세계, 구원의 문제를 스크린에 당기 시작한 것이다. '순교자' 와 '사람의 아들' 등이 그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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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인 정보조사

출처 : 한국영화인 정보조사
1925년 황해도 봉산군 사리원에서 태어났으며, 동국대학교 국어국문학과를 졸업했다. 1947년 학내에 영화예술연구회를 조직하는 등 재학 당시부터 영화 제작과 탐구에 매진한 것으로 보인다(한국영화감독사전). 정창화 감독의 <최후의 유혹>(1953)에서 각본을, 이규환 감독의 <춘향전>(1955)에서 조감독을 맡은 후 1956년 <교차로>의 연출을 맡으면서 감독으로 데뷔했다. 이후 <유전의 애수>(1956), <인생차압>(1958), <구름은 흘러도>(1959) 등을 연출하며 주목 받던 그는 1961년 이범선 원작의 <오발탄>으로 평단의 큰 주목을 받게 된다. 4월 13일의 첫 개봉 당시에는 관객들에게 별 다른 호응을 얻지 못한 이 작품은 5.16 군사정변 이후 상영 중지 처분을 받았으나, 제7회 샌프란시스코국제영화제에 출품되면서 1963년 세 번째로 개봉될 수 있었다고 한다. 이영일 등 당대의 평자들에 의해 “한국 리얼리즘의 절정을 이루는 영화”로 평가받았다(한국영상자료원a). 이 작품 이후에도 <김약국의 딸들>(1963), <잉여인간>(1964), <순교자>(1965), <막차로 온 손님들>(1967), <카인의 후예>(1968) 등 문학작품 원작을 바탕으로 진지한 영화적 탐구를 지속한 작품들을 만들어 주목 받았으며, 실험적 색채가 강한 <춘몽>(1965)은 ‘음화제조죄’ 명목으로 박정희 정권이 감독에게 직접 제재를 가하기도 했다(한국영상자료원b). 한편으로 그는 <특급 결혼작전>(1966), <공처가 삼대>(1967), <몽땅 드릴까요>(1968) 등 코미디 장르에 대해서도 지속적으로 관심을 놓지 않았다. 후기를 대표하는 작품들로는 <수학여행>(1969), <분례기>(1971), <장마>(1979), <사람의 아들>(1980) 등이 있으며, 마지막 작품은 1994년작 <말미잘>이다. 당대 다른 감독들에 비해 과작이었다고 할 수 있다. 1970년대에는 제작자로도 변신하여 <로보트 태권V>(1976)를 시작으로 한 네 편의 시리즈, <날아라 원더공주>(1978), <콩쥐팥쥐>(1978), <날아라 우주전함 거북선>(1979) 등의 인기 애니메이션을 제작했다. 1976년부터 동국대학교 연극영화과에서 교수로 활동했으며, 『한국영화 발달사』, 『세계영화감독론』, 『영화인생』 등 다수의 저술을 남기기도 했다. 2009년 6월 숙환으로 별세했다(연합뉴스).

* 참고문헌
연합뉴스 2009년 6월 28일자
한국영상자료원a, 한국영화데이터베이스 KMDb <오발탄> 정보.
한국영상자료원b, 한국영화데이터베이스 KMDb <춘몽> 정보.
김종원 외, 『한국영화감독사전』, 국학자료원, 2004.

[작성: 김한상]
출처 : 한국영화감독사전
1925년 7월 2일 황해도 봉산군 사리원이 고향. 시장 근처에서 도자기와 전당포를 경영하는 유희준의 9남매 중 5남으로 태어났다. 애주가인 아버지와 독실한 기독교 신자인 어머니 이희선 사이에서 유년 시절을 보낸 그의 성장 배경은 성격 형성에 적지 않은 영향을 미쳤다. 내성적 의식 속에 열정의 감정을 분출하는 그의 양면성은 뒷날 기독교적 사유와 비판적 현실인식이라는 이원론적 작품세계를 구축하는 요인으로 작용하였다. 고향에서 덕성 보통학교를 졸업하고 상경하여 1945년 3월 일제 말기에 휘문 중학교를 마쳤다. 일단 귀향한 후 소련군의 북한 진주로 남북이 분단되면서 1946년 초 월남하여 어머니의 뜻에 따라 감리교 신학교와 연희전문학교 신학과에 응시했으나 낙방, 엉뚱하게도 불교 재단이 운영하는 동국대학 국문학과에 입학했다. 희곡을 공부해 볼 생각이었다. 그런데 여름방학 때 국립도서관에서 개최한 오영진의 시나리오 강좌를 청강하게 된 것을 계기로 시나리오에 관심을 갖게 되었다. 더욱이 그 무렵 보게 된 <자유만세>(1946,최인규 감독)의 촬영 현장은 영화를 직접 만들어 보고 싶은 충동을 일게 했다. 이에 자극받아 2학년에 오르자 영화에 관심을 가진 70여 명과 함께 영화예술연구회를 조직,회장이 되고 지도교수로 시인이기도 한 김기림을 추대하였다. 이때 집필한 시나리오 <해풍>(45분)을 학교로부터 지원받은 30만원을 들여 인천 일대에서 촬영, 완성하고 학생예술제를 통해 발표하였다. 1948년 3학년 때였다. 졸업 후 영화계에 입문을 위한 첫 시도는 배우 모집 광고를 보고 응시한 일이었다. 필기시험에는 합격했으나 면접에서 떨어졌다. 면접관인 조정호 감독이 배우의 적성에는 맞지 않을 것 가다며 조감독을 권했기 때문이다. 결국 그 밑에서 <김상옥 열사>란 영화의 스탭 일원으로 참여했으나 자금난으로 중단되는 바람에 제대로 배울 기회를 얻지 못했다. 뒤이어 들어가게 된 것이 임운학이 연출하는 <홍차기의 일생>(1948)의 조감독이었다. 16미리 무성영화인 이 작품에 그는 얼굴을 잠깐 비치기도 하였다. 그러나 기술 뿐만 아니라 영화에 혼이 들어가야 한다는 작가정신을 일깨우게 해준 것은 이규환 감독이었다. 그의 문하에서 중흥기의 밑거름이 된 히트작 <춘향전>(1955)을 마지막으로 조감독 생활 7년을 마무리하기까지 많은 것을 배웠다. 그는 이에 앞서 이미 시나리오 작가로 데뷔한 처지였다. 1953년 정창화 감독의 <최후의 유혹>이 바로 그것으로, 향락과 폭력을 일삼는 밀수배 일당에게 아지트를 제공한 바의 마담이 애인과 더불어 경찰에 고발하여 소탕케한다는 내용이다. 그에게 기다리던 감독 입문의 기회가 온 것은 1956년 서른 살 때였다. 그의 실력을 익히 알고있던 한국배우 전문학원 김인걸 원장이 이청기의 시나리오 <교차로>를 들고 찾아왔기 때문이다. 조미령이 1인2역한 이 영화는 쌍둥이 자매의 각기 다른 운명을 그린 멜로드라마이다. 신문 기사적 소재를 경쾌한 터치로 처리하면서도 안정된 커팅과 영상 감각을 보여주어 관심을 끌었다. 그 자신의 표현 <영화인생/혜화당,1995)을 빌면 '문제의식을 가진 주제에 관심을 갖지 않고 영화적 기교에만 신경을 쓰던 청년기의 작품'이었다. 계속해서 같은 해 최무룡과 문정숙이 공연한 <유전의 애수>(1956)를 내놓았는데, 이 작품은 학술조사단의 일원으로 한라산을 등반했다가 실종당한 아들의 일기장에서 한 백화점 여직원을 짝사랑했었다는 사실을 알아낸 아버지가 그녀를 찾아 위령제에 참석해달라는 부탁을 하게되면서 빚어지는 이야기다. 이 역시 주제보다는 테크닉에 의존해 만들었다. 그는 세 번째 최무룡이 제작,주연한 <잃어버린 청춘>(1957)에 이르러서야 기교주의에서 탈피하여 내용에 상응하는 표현의 조화를 이루게 된다. 바의 여급으로 있는 애인과 새살림을 꾸밀 방을 보러 가야 할 시간에 살인범으로 몰려 서울을 떠나야 할 처지에 놓인 전공 위진구의 도피와 자수의 드라마. <유전의 애수>의 각본을 쓴 바 있는 유두연의 시나리오다. 네 번째 선보인 이용,도금봉 주연의 <그대와 영원히>(1958)는 10여년 만에 감옥에서 풀려나온 소년 범죄자가 겪는 사회부조리와 단절감을 그려 테마가 분명치 않다는 지적을 받았으나 특유의 다이내믹한 화면구성과 카메라의 움직임에 대해서는 높은 점수를 받았다. 이에 비해 오영진의 <살아있는 이중생 각하>를 자신의 시나리오로 영화화한 <인생차압>(1958)은 서사구조,형상력,연기 면에서 고른 호평을 받았다. 해학성이 돋보이는 이 영화는 돈을 벌기 위해 횡령,탈세 등 온갖 수단을 가리지 않은 이중생 사장(김승호)이 법망에 걸리게 되자 가짜 자살극을 꾸며 위기를 모면하려는 모습을 담았다. 하지만 여기에서 노린 것은 잔꾀로 꾸민 죽음의 해프닝이 아니라, 주인공이 죽은 것으로 여긴 가족과 주변 인물들의 이기주의적 본성과 행태를 풍자했다. 관객 동원에도 성공했다. 그는 이후 박암, 문정숙 주연의 멜로 드라마 <아름다운 여인>(1958)을 비롯하여, 재일동포 안말자소녀의 일기를 스트린에 옮긴 김영옥 주연의 <구름은 흘러도>(1959),김진규,최무룡이 연기 대결을 보인 <오발탄>(1961),박경리 소설로 유명한 김동원,엄앵란 주연의 <김약국의 딸들>(1963),손창섭 원작으로 제2회 청룡상 작품상,감독상을 수상한 <잉여인간>(1964),재미작가 김은국의 소설 원작 <순교자>(1965),누구에게도 구원을 청할 수 없는 상처투성이 여인의 죽음을 그린 고은아 주연의 <종야>(1967),옴니버스 형식으로 탐색한 오영일,문희 주연의 <한>(1967),폐병으로 시한부 인생을 선고받은 이순재,문희 주연의 <막차로 온 손님들>(1967),분단이 빚은 이데올로기의 갈등을 토지개혁의 과정을 빌어 조명한 반공문예물 <카인의 후예>(1968),문명의 사각지대인 낙도의 어린이들에게 도시의 문물을 체험케 하는 구봉서 주연의 <수학여행>(1969),소련군이 점령한 북한에서 이데올로기의 노예가 되어 인간성을 잃어가는 공산주의자들의 잔학성과 이에 희생되는 젊은이들의 비극을 빌어 공산주의의 허구성을 고발한 김진규 주연의 <나도 인간이 되련다>(1969)등을 내놓았다. 1970년대 이후에는 짙은 향토색을 바닥에 깔고 빈곤과 무지,욕정이 빚어내는 한 여인의 모진 운명을 그린 윤정희 주연의 <분례기>(1971),오소독스한 연출로 3.1운동,태평양 전쟁의 일제 말기에서 8.15해방, 6.25전쟁으로 이어지는 우리의 근대사를 3대에 걸친 어느 가문의 이야기를 통해 투영시킨 하명중 주연의 <불꽃>(1975),일본 아악계의 거장이 자기의 음악세계에 회의를 느끼고 제주도의 가야금 명인을 찾아와 연주를 들은 뒤 횡사하는 최불암 주연의 <문>(1977),6.25라는 민족사적 참화의 비극 속에 우리 고유의 전통 정서 속에 스며있는 토속적 무속신앙을 의식의 저변에 깔고 이야기를 끌어 나간 이대근 주연의 <장마>(1979),여호와 하느님은 고난받는 민중들에게 아무런 구원도 주지 못하고 있다는 회의에 빠진 신앙인이 스스로 몸을 던져 고난을 선택함으로써 행동신앙을 실천한 하명중 주연의 <사람의 아들>(1980)등 화제작과 가작을 발표하였다. 이밖에 <임꺾정>(1961),<성웅 이순신>(1962)등 두 편의 사극을 비롯하여 <아낌없이 주련다>(1962),<푸른 꿈은 빛나리>(1963),<아내는 고백한다>(1964),<푸른 별 아래 잠들게하라>,<춘몽>(1965),<공처가 3대>(1967),<아리랑>(1968),<옛날 옛적에 훠어이 훠이>(1978)등을 남겼다. 1956년 첫 영화 <교차로>이후 마지막 감독작인 <말미잘>(1995)까지 40여년 남짓되는 영화감독 생활 동안 그가 내놓은 작품은 모두 43편을 헤아린다. 이 가운데서도 <오발탄>(1961)은 나운규의 <아리랑>(1926)이후 최대의 성과로 꼽힌다. 리얼리즘 영화의 정점으로서 자타가 공인하는 문제작이다. <교차로>,<유전의 애수>등 몽타주 중심의 초기영화와는 달리 현실의식의 면모를 드러낸 이 영화는 분단 전쟁이 휩쓸고 지나간 폐허 ㅅ고에서 실날같은 희망을 갖고 살아나가는 철호(김진규)일가의 상실감과 좌절을 특유의 날카로운 완성도 높은 손창섭 원작, 임희재,신봉승 각색 <잉여인간>(1964)을 들 수 있다. 그는 대종상,청룡영화상,백상예술대상,영평상 등 국내의 영화상을 여러 차례 받았을 뿐 아니라, 한국소형영화동호회 초대 회장을 위시하여 한국영화학회 회장, 동국대학교 교수 및 예술대 학장(1976-1990)등을 역임했으며 현재 예술원 회원으로 있다. (김종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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