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기
Kim ki / 金起 / 1929  ~ 
대표분야
감독
데뷔작품
동백아가씨 1964
활동년대
1960, 1970, 198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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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모그래피 (6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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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독 :
다시 일어나는 깃발 (김기, )
비둘기고지 육탄 10용사 (김기, )
유정 (김기, 1987)
초야에 타는 강 (김기, 1985)
화녀촌 (김기, 1985)
남과 북 (김기, 1984)
도시에서 우는 매미 (김기, 1984)
약속한 여자 (김기, 1983)
유혹 (김기, 1982)
겨울사냥 (김기, 1982)

주요경력

1957년 이봉래씨 문하생으로 들어감. 6년 동안 조감독 생활
1964년 '동백아가씨'로 감독 데뷔

기타정보

기타이름
김기현
영화계 입문배경
이북에서 태어나 자랐는데 소련 영화를 많이 봤다. '시베리아의 대지곡'을 보고 나서는 동네 아이들과 연극을 하기도 했다. 영화는 늘 동경의 대상이었다. 6.25나고 혼자서 남으로 내려 왔다. 부산에 있는 삼촌 집에서 일을 했는데 삼촌 친구인 부산 동국대학교 이종인 씨가 이봉래 감독의 친구였다. 이봉래 씨가 영화를 찍는 다는 얘기를 듣고 무작정 이봉래 감독을 찾아 서울로 올라왔다. 1957년 이봉래 씨 문화생으로 들어가서 6년 동안 조감독 생활을 했다.
주요 영화작품
동백아가씨(1964,김기)
여자가 고개를 넘을때(1965,김기)
첫사랑(1965,김기)
성난 독수리(1965,김기)
독거미(1966,김기)
남매(1967,김기)
연상의 여인(1968,김기)
설녀(1968,김기)
장마루촌의 이발사(1969,김기)
초심(1969,김기)
울고간 여인(1970,김기)
일등사장(1970,김기)
사랑에 목숨걸고(1970,김기)
욕망의 사나이(1970,김기)
두 남자(1971,김기)
어머님전상서(1971,김기)
토요일오후(1971,김기)
어머니의 영광(1973,김기)
여로(1973,김기)
여로 속(1973,김기)
설야(1974,김기)
형사 배사룡(1975,김 기감독)
반수반인(1975,김기)
졸업생(1976,김기)
별3형제(1977,김기)
병사와 아가씨들(1977,김기)
상처(1978,김기))
돌의 초상(1979,김기)
청춘의 덫(1979,김기)
마지막 밀애(1980,김기)
유혹(1982,김기)
약속한 여자(1983,김기감독)
남과 북(1984,김 기)
초야에 타는 강(1985,김기)
화녀촌(1985,김기)
유정(1987,김기)
애착작품 및 사유
'동백아가씨'를 첫번째로 꼽고 싶다. 그당시 인기가 많아서 을지극장에 그렇게 많이 들기는 처음이었다.전국적으로 히트를 쳤다. '동백아가씨'를 지금 봐도 재밌다. 첫작품이 인기를 끌면 10년 동안은 작품의뢰가 들어온다 애착이가는 이유이다.'여로'는 KBS드라마를 영화로 찍은 것이다. 그당시는 감독이 영화를 제작하는 경우가 많았다. 김관현과 같이 처음으로 영화 제작을 했으며 인기가 좋아서 속편도 찍었다. '남과 북'은 김기현 감독의 작품을 다시 찍은 것이다. '남과 북'이 멜로드라마이지만 시나리오가 참 좋아서 참잘된 작품이라서 한 번 보라고 권하고 싶다.
영화속 명소
'화녀촌'에서 배경으로 택했던 오대산을 추천하고 싶으며 지금도 촬영지를 보면 가슴이 뭉클하다.
추구하는 스타일/배역
주로 멜로 드라마를 찍었다. 사회 부정 고발하는 영화를 많이 찍고 싶었으나 워낙 규제가 심해서 피해 가더보니 멜로드라마를 주로 찍게 되었다. 문제 의식이 담긴 멜로 드라마를 찍었다. 요즘 영화를 찍는 사람들이 부럽고 그 당시는 표현하는데 금기가 많아 고통이 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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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인 정보조사

출처 : 한국영화인 정보조사
김기는 북한에서 태어나 어린 시절 소련 영화를 보면서 자랐다. 흥남화학전문학교를 졸업하고, 한국전쟁 때 월남하여 삼촌 집에 머물다가 삼촌 친구였던 이봉래 감독을 알게 되어 1957년 그의 연출부에 들어갔다. 이봉래 감독의 조감독으로 7년 동안 연출공부를 한 후 <동백 아가씨>(1964)로 감독 데뷔했다. 라디오 드라마를 영화화한 <동백 아가씨>는 당대 최고의 콤비였던 신성일, 엄앵란이 주연으로(한국영화감독사전, KMDb), 을지극장에서 개봉되었으며, 당시 을지극장 개관이래 최대 관객을 동원하며 흥행에 성공을 거두었다(동아일보). 또한 당시 무명이었던 가수 이미자가 불렀던 동명의 주제가 <동백아가씨>를 계기로 국민가수 대열에 올라섰다. <동백아가씨>의 흥행으로 김기는 데뷔와 동시에 충무로의 인기 감독이 되었다.
<동백 아가씨>의 성공 이후 많은 멜로드라마를 연출했다. 1970년대 TV 보급과 함께 폭발적인 인기를 모았던 일일연속극 <여로>를 영화로 제작, 연출하였다. <여로>(1973)는 크게 흥행했고 속편까지 만들어으며, 1978년 작 <상처> 또한 흥행에 성공했다. 1979년에는 김수현 원작의 TV드라마를 영화화한 <청춘의 덫>(1979)을 연출했다. 이 영화 또한 흥행에 성공해 멜로드라마의 대가로 추앙받았다. 50여 편의 극영화를 연출했는데 그가 연출한 영화들은 대부분 멜로드라마였다. 김기 자신은 현실 참여적인 영화를 찍고 싶었으나 규제가 심했던 시대상황으로 멜로드라마를 주로 만들 수밖에 없었다고 한다. 그러나 그는 시대와 타협하지 않고 자신의 멜로드라마에 문제의식을 담아내고자 노력했다(한국영화감독사전, 한국영상자료원, 경향신문).

* 참고문헌
한국영화감독사전
(http://www.kmdb.or.kr/movie/md_basic.asp?nation=K&p_dataid=03356)
경향신문 1979년 8월 18일자 5면.
한국영상자료원, 한국영화데이터베이스 KMDb 설문조사, 2001.

[작성: 김성희]
출처 : 한국영화감독사전
1929년 2월 15일(음) 함남도 함흥 출생. 북한에서 태어나 그곳에서 자랐는데, 어린 시절 소련 영화를 많이 보면서 영화를 동경하게 되었다. 흥남화학전문학교를 졸업하고 6.25 때 혼자 남으로 내려와 삼촌 집에 머물 때, 삼촌 친구인 이종인 박사의 소개로 1957년, 이봉래 감독 문하생으로 들어가 영화와 첫 인연을 맺었다.
이봉래 감독 밑에서 7년 동안의 조감독 생활을 마친 그는 <동백 아가씨>(1964)로 데뷔했다. 라디오 드라마였던 이 영화는 멜로드라마였다. 섬처녀가 서울서 온 대학생과 사랑하여 임신하게 되자 아버지 몰래 남자를 찾아 서울로 올라오지만, 이미 그는 유학을 떠난 뒤였다. 우여곡절 끝에 바의 여급으로 살아가는데, 옛 애인이 나타난다. 그러나 그는 다른 여인과 가정을 이루고 살고 있었다. 이제 그녀는 아이를 넘겨주고 섬으로 돌아간다. 당대 최고의 콤비였던 신성일, 엄앵란 주연, 김승호, 황해 출연의 이 영화는 엄청난 흥행을 기록했다. 가요계에서는 무명이었던 이미자가 영화 <동백아가씨>의 주제가를 불러 공전의 히트를 치면서 국민가수로 떠오르게 되었다.
이후 그는 계속해서 멜로드라마를 연출했다. <여자가 고개를 넘을 때>(1965), <첫사랑>(1966), <독거미>(1967), <연상의 여인>(1968) 등을 연출했으며, 1969년에는 <설녀>, <초심>, <목메어 불러봐도>, <가슴에 맺힌 눈물>, <울지도 못합니다>, <한발은 지옥에>, <용호칠협> 등 무려 7편이나 연출하는 다작을 과시했다. 이후 그는 <울고 간 여인>(1970), <어머니 전상서>(1972) 등의 멜로드라마를 계속해서 연출했다. 이 때 김기 감독이 연출한 영화들은 한국영화의 황금기라는 1960년대 후반의 정서와 맞는 영화들이었다.
이 시기에 한 가지 놓칠 수 없는 김기 감독의 경향은 남자들만의 비밀을 소재로 한 멜로드라마도 연출했다는 것이다. 공군 영화 <성난 독수리>(1965), <일등사장>, <돌아온 남아>(1970), <욕망의 사나이>, <두 남자>(1971) 등의 영화가 이런 경향에 속한다.
1973년에 그는 새로운 전기를 맞게 된다. 당시 TV가 일반화되면서 일일연속극으로 폭발적인 인기를 구가하던 <여로>를 제작, 연출했던 것이다. TV에서 한창 주가를 올리고 있던 장욱제와 태현실이 주연한 이 영화는 TV와 내용이 비슷했지만, 그 당시에는 TV가 일반화되어 있지 않을 때라 연속극을 보지 못했던 사람들이 이 영화를 보러 몰려들었다. 김기 감독은 흥행업자들의 요구로 인해 다음 해 속편까지 만들게 된다.
이후 그는 <형사 배삼룡>, <병사와 아가씨들>(1977)을 연출한 후 <상처>(1978)를 통해 다시 한번 흥행에 성공한다. 김자옥과 이영하가 주연을 한 <상처>는 국도극장에서 개봉되어 김기 감독의 저력을 확인하게 된다. 사랑한 애인과 동거로 아이를 가지게 되지만, 애인이 떠나게 되자 자신도 자살한다는 내용의 이 영화에서 훗날 스타가 된 이영하가 데뷔했다. 이듬해인 1979년에 김수현 원작의 <청춘의 덫>을 연출했다. 출세욕 때문에 아이가 있는 애인을 버리고 사장딸과 결혼한 남자에게 애인이 복수한다는 내용의 멜로드라마였다. <청춘의 덫>은 당시 TV드라마로 인기를 구가하고 있었으나 방송심의위의 중단 선고로 쉬고 있을 때였는데, 이런 상태에서 발빠르게 영화로 제작함으로써 엄청난 흥행을 터뜨렸다.
이후 김기 감독은 멜로드라마를 계속해서 연출했다. <여자이기 때문에>, <마지막 밀애>(1980), <겨울에 내리는 봄비>(1981), <유혹>(1982), <유정>(1987) 등이 그가 연출한 영화들이다. 1984년에는 김기덕 감독의 영화 <남과 북>(1965)을 리메이크한 영화 <남과 북>을 연출하기도 했고, 1985년에는 문예영화 <화녀촌>을 연출하기도 했다.
그는 총 80여 편의 영화를 연출했다. 극영화가 51편, 군 홍보영화가 30여 편이다. 그가 연출한 극영화들은 대부분 멜로드라마이다. 문제 의식이 담긴 멜로드라마를 연출하고 싶었다는 감독의 말처럼, 그런 경향의 영화도 있고, 단순한 인기에 부합한 영화도 있으며, 흥행에서 엄청난 성공을 거둔 영화도 있고, 비평에서 좋은 평가를 받은 영화도 있다. 김기 감독은 한국영화의 황금기에 영화를 시작해서 침체기에도 꾸준히 자신의 색채를 유지하면서 멜로드라마를 연출했던 감독이다. 그것이 복수의 치정극이든, 순수한 연가든 간에 김기 감독은 그런 사랑을 통해 관객들의 정서에 닿고자 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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