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진섭
Roh Jin-seup / 盧鎭燮 / 1929  ~ 
대표분야
감독, 제작/기획
데뷔작품
울면서 한세상 1965
활동년대
1950, 1960, 1970, 1980, 199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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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모그래피 (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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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독 :
제4의 공포 (노진섭, 1984)
보람에 산다 (노진섭, 1979)
새벽에 온 방문객 (노진섭, 1975)
소띠아저씨 (노진섭, 1974)
행복이 쏟아지는 벌판 (노진섭, 1973)
천사의 분노 (노진섭, 1973)
처녀시절 (노진섭, 1973)
화조 (노진섭, 1971)
사랑을 빌립시다 (노진섭, 1971)
별난 새댁 (노진섭, 1970)

주요경력

1929년 3월 20일 함경남도 함흥 남문리 출생
1951년 1.4 후퇴 당시 흥남에서 거제도로 월남
1953년 전쟁 후 영등포에서 사진현상소 운영
1955년 <불사조의 언덕>(전창근) 녹음시 조수
1956년 최문일의 소개로 이강천의 <격퇴> 촬영조수로 들어갔다 연출부로 전환. 이후 64년 까지 9년간 이강천 감독 아래서 조감독 생활
1957년 <사랑>(이강천)
1958년 <아름다운 악녀>(이강천), 최초 시네마스코프 <생명>(이강천)
1959년 <젊은 아내>(이강천)
1960년 <사랑의 역사>(이강천)
1962년 <두고 온 산하>(이강천)
1965년 <울면서 한세상>으로 감독 데뷔
1970년대 약30편의 문화영화 감독
1982년 <과학하는 마음>, <독>, 1983년 <한줌의 흙>등 17편의 문화기록영화 감독
1991년 <사의 찬미> 제작 총지휘

기타정보

영화계 입문배경
최문일감독의 소개로 이강천감독을 만나게되고, 1955년부터 1964년까지 이강천감독의 조감독으로 육군본부기획영화인 <격퇴>를 조감독하면서 입문함.
애착작품 및 사유
<셋방살이>는 서민들의 생활상을 본인의 의도대로 그려낸 작품이고, <화조>는 그시대 젊은이들의 건전한 생활기록으로서의 진실을 묘사하려한 작품이라 자신이 추구하는 스타일이므로 애착을 갖고있고, <사랑을빌립시다>는 세상풍자극으로서 좋아하는 작품이다.
영화속 명소
<별난여자>의 팔당댐 건설전의 건설작업준비 중인 현장에서 주인공 신성일, 문희의 러브신이 담긴 장면. 지금은 댐 건설이후이므로 찾을수 없음
추구하는 스타일/배역
서민들의 생활상을 그리거나, 젊은이들의 삶의 진실을 묘사해내는 작품을 추구하고, 라이트코메디를 통해 세상을 풍자하기도 한다. 그렇지만 간혹 시류에 따라 유행하는 작품을 만들어내기도 하였다.

영화인 정보조사

출처 : 한국영화인 정보조사
1929년 함경남도 함흥 출생으로 영화에 대한 꿈을 키워오다 1947년 북조선 국립영화촬영소 설립 당시 들어가려고 했으나 뜻을 이루지 못했다고 한다. 한국 전쟁이 발발하고, 1.4 후퇴 때 혼자 월남하여 1955년 <불사조의 언덕>의 조감독이던 최문일의 소개로 이강천 감독을 알게 된다. 1956년 이강천 감독이 <격퇴>를 찍을 무렵, 촬영조수로 들어가 녹음할 무렵 연출부가 되었다. 이후 이강천 감독의 <아름다운 악녀>(1958) <생명>(1958)과 신상옥 감독의 <사랑의 역사>(1960) 등의 조감독을 거쳐 1965년 서민적 삶을 다룬 <울면서 한 세상>이라는 영화로 감독 데뷔하게 된다. 1970년대에 들어와 <별난 여자>(1970), <별난 세댁>(1970), <사랑을 빌립시다>(1971) 등의 코미디 영화를 내놓고, 이승복을 다룬 반공영화 <천사의 분노>(1973) 등을 연출한 뒤, 1980년대에는 <과학하는 마음>, <독> 등의 문화영화를 연출한다. (한국영상자료원)

* 참고문헌
한국영상자료원 엮음, 『한국영화를 말한다-1950년대 한국영화』,도서출판 이채, 2004, 113~130쪽

[작성: 황미요조]
출처 : 한국영화감독사전
1929년 3월 20일 출생. 원적은 함경남도 함흥시 남문리 2가, 본적은 서울시 중구 인현동 2가 155번지이다. 함흥 제2공립 보통학교 졸업하고, 함흥공립 농업학교를 졸업했다. 최문일 감독의 소개로 이강천 감독을 만나서 1955년부터 1964년까지 이강천 감독의 조감독으로 육군본부기획영화인 <격퇴>를 조감독하면서 영화계에 입문했다.
감독 데뷔는 1965년 <울면서 한세상>이었다. 후처로 들어온 여자와 그의 자식들을 구박하다가 그녀가 죽고 나자 결국 후회한다는 내용의 영화로서, 김승호, 조미령, 이대엽, 박암 출연작이었다. 이 영화에는 노진섭 감독이 자주 다루는 주제 가운데 하나인 서민들의 팍팍한 생활상이 들어있다. 이듬해 역시 서민의 팍팍한 삶을 다룬 <보경 아가씨>(1966), <셋방살이>(1966)를 연출했다. <셋방살이>는 노진섭의 의도가 잘 드러난 영화이다. 집 없는 설움 때문에 순경을 그만두고 열심히 고시공부를 해서 마침내 집을 구한다는 설정은 그리 새로운 것이 없지만, 곳곳에 드러난 서민들의 생활상을 담아내려는 감독의 의도가 잘 드러난 영화이다. 김승호, 황정순, 남정임 출연작이다. <외동딸>(1966) 역시 이런 내용이다.
이후 그는 코미디로 선회한다. <별난 여자>(1970), <별난 새댁>(1970), <사랑을 빌립시다>(1971) 등의 영화들이 그렇다. <사랑을 빌립시다>는 세상풍자극으로서, 사장의 비서와 사장 딸 사이에 얽힌 감정에 대한 유쾌한 코미디이다. 감독 자신이 그 시대 젊은이들의 건전한 생활기록으로서의 진실을 묘사하려한 작품이라는 <화조>(1971)도 이 시기의 영화이다.
1973년 그는 열심히 황무지를 일구는 가족을 소재로 한 계몽영화 <행복이 쏟아지는 벌판>(1973), 이승복 어린이를 다룬 반공영화 <천사의 분노>(1973), 새마을 운동을 실천하는 인물을 그린 계몽영화 <소띠 아저씨>(1974)를 감독했다. 감독의 말처럼 이 시기는 시류에 따라 유행하는 작품을 만든 시기였다. 그리고 1975년 그는 이제까지 한번도 시도하지 않았던 공포영화 <새벽에 온 방문객>(1975)을 감독했고, 그의 마지막 극영화도 <제4의 공포>(1984)였다.
그는 극영화 외에도 약 17여 편의 문화기록영화를 연출했다. 1982년에는 <과학하는 마음>으로 대종상문화영화부문 우수작품상을, 1983년에는 <독>으로 영화진흥공사 문화영화예술제 작품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한편 노 감독은 <사의 찬미>(1991, 김호선), <애니깽>(1994, 애니깽)의 제작총지휘를 맡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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