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영순
Gwon Yeong-sun / 權寧純 / 1923  ~  1992
본명
권영계 (Gwon Yeong-gye)
대표분야
감독, 편집
데뷔작품
옥단춘 1956
활동년대
1950, 1960, 1970, 1980, 1990
DB 수정요청

필모그래피 (8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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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독 :
에덴의 서쪽 (권영순, 1994)
칠삭동이의 설중매 (권영순, 1988)
인사야투 (권영순, 1981)
사향마곡 (권영순,데디 취이, 1981)
중원대협 (권영순, 1978)
대사부 (권영순,장기, 1978)
용사왕 (권영순,화산, 1976)
불꺼진 창 (권영순, 1976)
일본 속의 한국문화 (권영순, 1976)
인사여무 (권영순,홍홍,노준곡,두문파, 1975)

수상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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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인 정보조사

출처 : 한국영화인 정보조사
1923년 경상북도 안동에서 출생했다. 귀국 후 한형모 감독의 <성벽을 뚫고>(1949년) 조감독으로 영화계에 발을 들여놓게 되었다. 1956년 <옥단춘>으로 영화감독으로 데뷔했다. 그 후 <한많은 청춘>(1958년), <오부자>(1958), <가는 봄 오는 봄>(1959년), <정복자>(1963), <무적자>(1966), <에밀레종>(1968), <쌍용검>(1969), <복수의 마검>(1970) 등 50-60년대에 걸쳐 멜로드라마, 코미디, 사극, 활극 등 다양한 장르의 작품을 연출하였다. 그의 대표작은 이광수 원작을 영화화 한 <흙>(1960)으로, 식민지 시대를 배경으로 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시대의 격리감을 압축하여 공감있게 연출”하여 “어느 춘원 소설의 영화화보다도 성공한 편”이라는 호평을 얻었다(동아일보). 그의 필모그래피는 80년대와 90년대까지 이어진다. 마지막 연출작은 1994년 작 <에덴의 서쪽>이다. 1991년 제2회 이천춘사대상영화제에서 춘사영화예술인상을 수상하였다.

* 참고문헌
동아일보 1960년 1월 28일자 4면
김종원,『한국영화감독사전』, 국학자료원, 2004.


[작성: 김한상]
출처 : 한국영화감독사전
1923년 경상북도 안동 출신. 젊은 시절 일본으로 건너가 견문을 넓혔다. 귀국 후 한형모 감독 문하에서 <성벽을 뚫고>(1949년) 조감독으로 영화계를 노크했다.
영화 <옥단춘>(1956년)이 데뷔작. <옥단춘>은 온갖 유혹과 협박에도 굴하지 않고 의연히 절개를 지킨 평양 기생 옥단춘의 생애을 그렸는데 당시 신인여배우 윤인자(尹仁子)(1957년) ><한많은 청춘>(1958년) <가는 봄 오는 봄>(1959년) 등 멜로성 영화에 손을 대었으나 이후 권감독의 대표작이라 할 수 있는 <흙>(1960년)을 발표했다. 김진규 문정숙 김승호 조미령 출연. 이광수의 소설 원작을 영화한 것으로 주인공 허준은 은인의 딸과 결혼한다. 그는 고향인 농촌으로 내려가서 농민들을 위한 계몽 사업에 몰두한다. 그러자 남편의 그런 뜻을 못마땅해 하던 아내는 외간 남자와 저을 통한다. 그런 허준에게는 그의 고매한 인격에 따르는 여자들이 많았다. 그러니 허준은 그런 유혹에 꿈쩍도 않는다. 결국 아내는 정신을 차리고 남편 허준에게 되돌아온다. 이후 두 내외는 힘을 합쳐 농촌 사업에 전념한다는 게 대충 줄거리다. 특기 할 일은 그의 1958년 작품 <한많은 청춘>에서 안성기가 아역으로 첫 선을 보였다는 사실이다. 이 영화는 소매치기와 여대생과의 순정 연애를 담고 있는데 김지미 황해 주연이었다.
그는 멜로에서 변신하여 사극이라든가 대작에 손을 댄다. <진시황제와 말리장성>(1962년) <정복자>(1963년) <에밀레 종>(1968년) <대지옥>(1972년) 등이 그것인데 권영순 하면 대작감독으로 정평이 나 있을 정도였다. <정복자>는 당시 대작인데다가 흥행 성공으로 그의 줏가를 한층 높이는데 기여했다.
이후 그는 다양한 흥행물에 손대었는데 <오부자>(1958년) <팔통팔반 여반장>(1964년) 등은 코메디에 속하는 것이었고 <남아일생>(1965년) <비호>(1969) <쌍용검>(1969년) <아편꽃>(1969년) <무정객>(1969년) <백면검혼>(1969년) <유정검화>(1970년) <복수의 마검>(1970년) 등 활극도 만든다.
이상의 영화 제목에서도 일별할 수 있듯이 작품의 다양성이 주목을 끌었다. 무술영화는 무엇보다도 시일이 많이 걸리고 감독의 강인한 체력을 요구한다, 게다가 나름대로의 고도의 전문성을 필요로 하는데 그런 애로를 권감독은 너끈히 극복한 분이었다. 그의 공식적인 작품 기록은 50편으로 나와 있다.
<오부자>(1958년)는 당시 흥행에 성공한 코믹작품이다. <오부자>는 화복하게 살아가는 오부자 가정의 아들 5형제가 갖은 우여곡절 끝에 성공, 합동결혼식을 올리게 된다는 내용물이다. 김희갑 구봉서 이종철 양훈 등이 총출연했다. 그가 활역하던 1956년대는 한국전쟁 휴전 이후 어느 정도 사회 안정을 보여 한국영화의 성장기에 막 접어드는 시기였다. 그는 영화감독으로 온갖 부침을 거듭하면서 끝까지 자기 위치를 견지하는데 성공한 감독으로 간주된다. 한가지 특징은 촬영 현장에서 그는 어떤 조언도 듣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나쁘게 말해 고집불통이요 좋게 말해 줏대가 뚜렷했다. 자꾸 옆에서 간섭하면 “야, 니가 감독할 때 그렇게 해”하고 일갈을 했다는 건 잘 알려진 일화이다. 권감독은 호방한 성격에 걸맞게 술이 두주불사였다. 언 좌석에서나 활발하게 의사 개진을 마다 않았으며 화제를 주도하는 타입이었다. 틈만 나면 후배들과 어울리기 좋아했던 몇 안되는 선재 중의 한분이었다. 때문에 한때 감독협회가 양부되는 시기에 젊은 감독들로부터도 지도자로 추대되는 일도 있다. 고영남 감독이 수제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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