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46년-49년 최인규 감독의 문하로 영화계에 입문, 조감독
1950년 김성민 시나리오 <유혹의 거리>라는 데뷔작을 준비, 촬영과 편집을 마친 뒤 녹음을 준비하던 중 6·25 전쟁 발발, 화재로 원판이 소실됨.
1951년-52년 대구에서 국방부 정훈국 촬영대에 입대, 강원도 정선· 창녕 지역의 9사단으로 배치되어 활동하던 중 구사일생으로 탈출, 다시 대구에서 원대복귀를 했으나 부모님의 사고사로 인해 제대
1953년 실질적인 데뷔작이 된 <최후의 유혹>을 촬영, 부산 부민관 개봉, 흥행실패.
1956년-59년 <장화홍련전>을 시작으로 <풍운의 궁전>, <후라이보이 박사소동> 등 다양한 장르의 영화를 연출하면서 액션영화 연출을 위한 기틀을 다짐 <망향>을 비롯한 한홍합작 영화 연출을 시작
1960-67년 <햇빛 쏟아지는 벌판>부터 본격적인 액션영화 연출을 시작, <지평선> 이후 만주를 무대로 하는 대륙물들이 쏟아지기 시작했으며, 그 외 청춘영화를
비롯하여 특히 액션이 가미된 다양한 영화들을 연출
1967년-72년 <순간은 영원히>를 본 홍콩 쇼 브라더스사의 란란쇼 사장으로부터 스카우트, 홍콩에서 <천면마녀>, <여협매인두>, <아랑곡> 등 무협영화 성공
1972년 <죽음의 다섯 손가락>을 연출, 할리우드 박스 오피스에서 1위
1973년-77년 골든 하베스트로 이적한 뒤 <흑야괴객>, <황비홍소림권>등을 연출
1978년 한국으로 돌아와 화풍흥업주식회사를 설립. 1986년까지 29편 제작
1981년 사단법인 한국영화제작자협회 부회장
1982년 사단법인 한국영화제작협동조합 이사
1983년 사단법인 한국영화제작자협회 이사
1996년 미국으로 이주
2003년 제8회 부산국제영화제 회고전에서 『한국 액션영화의 전설, 정창화!』개최
2004년 홍콩필름아카이브에서 회고전 개최, 파리인터내셔널 필름 페스티발에서 회고전 개최
2005년 칸 영화제 클래식 섹션에 <죽음의 다섯 손가락> 초청됨
2007년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 장편 심사위원장 역임
2008년 춘사영화제 심사위원장 역임